새누리3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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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명기역사서인 열왕기서 – 당대 청중들에게 무엇인가를 말하고자 하는 설교적 관심으로 쓰인 역사서 – 쓰여진 시기 그 당시의 주관심이 투사될 수밖에 없음 – 모든 역사는 이해당사자의 관점을 반영한 역사 – 형식상 장르는 역사서이고 내용 장르는 설교 – 앗수르 왕들의 원정기록을 보면, 앗수르가 전쟁에서 패했다는 기록은 없음 – 사관의 애국심이 반영된 것 – 예언자적 역사해석은 하나님 원인론적 역사해석이며 신명기적 역사해석 – 하나님의 목적과 뜻을 잘 분별하는 것이 사실 충실성보다 더욱 중요 – 선조들의 불순종을 부각시킴을 통해 당대의 청중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도록 권고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록됨 – 다윗통치 말기(주전 970)부터 유다 유배와 여호야긴의 석방(주전 560)까지의 400년간의 역사적 사건을 예언자적인 관점으로 기록 – 객관적 역사 기술이 아닌 신앙의 관점에서 해석된 역사임 – 본문안에서 역사기록의 사실성을 추구하기 보다는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신앙적 교훈들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
2.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세 가지 입장 – 성경 역사성 최대 인정주의자(성경기록의 역사성을 최대한 인정하는 사람들), 성경 역사성 최소 인정주의자(성경기록의 역사성을 최소한 인정하는 사람들), 이스라엘 역사는 없다는 니힐리스트(이스라엘 역사는 신앙고백으로 쓰인 역사이기 때문에 순전한 의미의 역사는 아니라며 특수한 성경의 부분이 지닌 역사성을 아예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 – 마틴 노트는 ‘모세 없다’주의 – 우리가 아는 모세는 부풀려진 모세이고 성경안에서 만들어진 모세 – 알트–노트 학파는 족장시대 역사는 인정하지 않고 사사시대부터 인정 – 핀켈스타인은 오므리 왕조의 치적을 다윗왕조의 치적으로 전환하였다 주장하며 다윗 왕실을 인정하지 않음 – 1993년에 시리아 연안에서 주전 9세기경 모음이 찍히지 않은 ‘베트 다윗’이라 쓰인 단 석비가 발견(베트 다빗이 아닌 베트 도드, 즉 도드의 신전으로 읽기도 함) – 고고학적 증거의 부재를 역사의 부재로 이해하는 것은 위험 – 주전 11세기의 주나라가 그렇게 강력한 나라라면 왜 고고학 자료가 없는가 – 벨하우젠은 모세오경안에 주전 5세기의 유대교가 출범할 때의 분위기가 반영되어 있다고 봄 – 지금 구약성경은 고대에 관한 책이 아니라 주전 5세기경의 유대교에 관한 책이라 주장 –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부단한 대화.
3.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열왕기의 저자를 예레미야로 봄 – 유명한 예언자나 왕에게 영예를 돌리는 관습에서 유래 – 그러나 열왕기안에 예레미야 사후에 발생했던 문제들도 언급되어 있음 – 최종 기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음 – 공동체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하나님의 계시를 선포하였던 다양한 인물들에 의해 단편적으로 기록되어졌다고 추측 – 열왕기가 참고했던 자료는 크게 세 가지 –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 유다 왕 역대지략, 솔로몬의 행장(왕상 11:41) – 최종완성 된 시기는 여호야긴이 석방된 것이 기록되어 있고, 고레스의 칙령이 언급되지 않는 것으로 볼 때 주전 560년에서 539년 사이에 기록되어졌을 것이라 여겨짐.
4.
열왕기는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한 권이었으나 70인역 에서부터 두 권으로 나뉨 – 70인역에서는 왕국 3서와 왕국 4서로 명명되었고, 벌게이트에서 열왕 3서와 열왕 4서로 명명됨 – 히브리어 사본이 두 권으로 나뉘어진 것은 15세기 사본부터 – 서술의 방식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한 왕의 업적을 소개하고 당시 남유다 왕의 업적을 소개한 후에 다시 북왕국 다른 왕의 업적을 소개하는 형식을 취함 – 왕들의 업적을 소개할 때는 공통적 패턴을 유지 – 서론적 형태로 왕의 이름과 즉위 연대, 왕이 즉위할 때의 나이(유다 왕의 경우), 즉위 기간과 장소, 왕의 모친의 이름(유다 왕의 경우), 신앙적인 평가를 하고 그 다음 즉위기간의 사건들을 서술한 후, 결론적 형태로 왕의 통치와 관련한 다른 자료들 언급, 죽음과 장사에 관한 언급, 계승자에 대한 언급을 함.
5.
열왕기의 내용구분 A 솔로몬왕국의 역사와 몰락(왕상 1–11장) B 여로보암과 북왕국의 분리(왕상 12–14장) C 유다 왕들과 이스라엘의 왕들(왕상 15:1–16:21) X 오므리왕조의 바알숭배(왕상 16:22–왕하 12:21) C’ 유다 왕들과 이스라엘의 왕들(왕하 13–16장) B’ 북왕국의 멸망(왕하 17장) A’ 유다 왕국의 역사와 멸망(왕하 18–25장) – 열왕기의 기간 400년 중 1/10밖에 되지 않는 오므리왕조에 대해 전체분량의 1/3가량을 집중 조명 – 이스라엘의 참 신은 여호와인가, 바알인가가 첨예하게 갈등한 시기가 오리므리왕조.
6.
열왕기에는 총 12명의 예언자가 등장 – 성실하게 임대료를 납부하지 않은 이스라엘을 책망하면서 멸망의 길로부터 이스라엘을 돌이키고자 한 돕는 자들 – 예언자들의 사역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멸망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수고하고 애쓰신 증거들 – 예언의 본질.
7.
이스라엘의 왕(19명) – 여로보암, 나답, 바아사, 엘라, 시므리, 오므리, 아합, 아하시야, 여호람, 예후, 여호아하스, 요아스, 여로보암 2세, 스가랴, 살룸, 므나헴, 브가히야, 베가, 호세아.
8.
남유다의 왕(20명) – 르호보암, 아비야, 아사, 여호사밧, 여호람, 아하시야, 아달랴, 요아스, 아마샤,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므낫세, 아몬, 요시야,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
– 주전 922/921년 통일 이스라엘 분열 후 북왕국은 200년간 독립국가로 존속, 9차례 왕조 교체, 평균 재위기간 10년, 남유다는 335년 존속, 19명의 남자와 1명의 여왕 통치, 평균 재위기간 17년 – 북왕국이 남유다에 비해 모든 것이 5배 가량 막강하였는데 시내산 계약의 불이행으로 말미암아 먼저 멸망함 – 불순종의 대파국을 보여줌.
1.
왕들을 평가할 때 핵심은 성전건축에 기여한 정도와 성전예배를 준수한 여부 –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모두 실제적 다종교 사회 – 이스라엘 백성에게 야웨신앙은 바알, 아세라, 밀곰, 그모스 등의 고대근동 우상들과 경쟁하는 여러 신중 하나였음 – 열왕기가 쓰여질 때 왕들의 군사적 업적을 강조하게 되면 바벨론 체제와 페르시아 체제와 충돌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도 성전중심의 기술을 한 이유 중 하나일 수 있음 – 다윗의 통치에 현격하게 미달되는 왕들의 몰락 이야기가 바로 열왕기 – 유다왕국의 회복 근거는 사무엘하 7장의 다윗언약(삼하 7:12–16).
2.
이스라엘 지도체제의 변화 – 모세, 여호수아의 전체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리더십에서 지도력이 축소된 사사시대 – 중앙집권적인 왕정 도래 – 사울 죽음 이후에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의 분열 – 다윗과 솔로몬의 통일 이스라엘 –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의 재분열 – 두 왕실 체제 – 포로기 이후 대제사장이 다스리는 신정체제 – 대제사장이라는 직함은 포로기 이후의 것 – 각 지역별 성소마다 각각의 제사장이 있었지 제사장들의 최고 직위를 갖는 대제사장이라는 직책이 포로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임.
서론
•
다윗의 왕위 계승 이야기
– 왕위를 어떻게 계승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확립되지 않은 시기
– 장자가 계승해야 한다고 주장한 헤브론파와 왕이 임명하는 자가 계승해야 한다고 주장한 예루살렘파
– 헤브론파는 보다 보수적이며 유다적이고 예루살렘파는 보다 자유로운 국제주의자들
– 다윗은 지방호족들의 후원을 통해 안정적인 정치기반을 확보하고자 정략결혼 혹은 중혼정책으로 수많은 자녀를 출생함
– 자녀들 상호간의 권력쟁취를 위한 암투 발생.
1:1–4
고대 사회에서 왕은 신과 백성들의 관계를 이어주는 존재이자 신의 복을 전달하는 상징적 주체로 인식(삼하 21:15–17; 23:2–4; 시 72; 애 4:20)
– 고대사회에서는 왕의 성적능력 약화를 통치능력 약화와 동일시함
– 이때 다윗의 나이 60세 후반(삼하 5:4–5, 왕상 2:11)
– 수넴 여자 아비삭으로 하여금 다윗을 봉양하게 함
– 고대 황제에게 사용되던 의료처방
– 이후에 아도니야가 아비삭을 아내로 달라고 하는 것에 대해 솔로몬이 분노하여 아도니야를 죽인 것을 보면 아비삭은 단순히 간병을 하는 자가 아닌 다윗의 아내나 첩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음
– 수넴은 잇사갈 지파가 살던 곳으로(수 19:18, 삼하 28:4, 왕하 4:8) 아가에 언급되는 술람미 여인이 수넴 여자라는 의견도 있다.
1:5–10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의 반역
열왕기상
1장
•
다윗의 살생부
– 정적을 제거하는 냉혹한 정치현실
– 솔로몬이 자신의 정적들인 헤브론파를 하나씩 제거함
– 정적제거를 통해 통치안정을 이룸
– 솔로몬의 폭군적 모습을 암시하는 복선
– 예루살렘파를 지지기반으로 통치를 시작함
– 왕상 1–11장의 솔로몬이야기는 나단 선지자의 지지로 시작한 솔로몬이 아히야 선지자의 정죄와 더불어 끝난다는 것과 통치 초기에 세 명의 대적들(아도니야, 요압, 시므이)을 제거하였지만 통치 후기에 세 명의 대적들(하닷, 르손, 여로보암)이 등장한다는 것으로 구성됨.
2:1–12
다윗의 유언과 죽음
–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강하고 담대하라’ 명하신 것처럼, 다윗은 솔로몬에게 대장부가 되라고 명함(2)
– 이 말은 용감한 사람이 되라는 뜻
– 다윗이 유언으로 심판해야 할 자들과 선대해야 할 자를 언급함
–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인 요압과 베냐민 지파의 정치실세이자 다윗을 저주한 바 있는 시므이를 죽이고 압살롬의 반역시 자신을 선대한 바르실래를 우대할 것을 명함
– 30세에 왕위에 올라 40년 통치 후 70세를 일기로 다윗이 죽음(10–11)
– 그의 시신을 안치한 ‘다윗의 묘실’은 초대교회 때도 존재함(행 2:29).
2장
•
솔로몬이 드린 일천번제와 솔로몬의 재판.
3:1
애굽과의 결혼동맹을 통해 나라를 견고케 하고자 한 솔로몬
– 애굽의 속국이 됨
– 형통과 번영, 풍요로움 안에 배교의 씨앗이 있다고 보는 것이 신명기 역사가의 관점(신 32:15)
– 하나님보다 애굽을 더 의지함
– 여기 애굽왕 바로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있음(시삭, 시아문...)
– 애굽과 바로라는 말이 주는 상징적 의미
– 애굽은 이스라엘이 가까운 관계를 가지거나 돌아가면 안 되는 땅(신 17:16)
– 바로는 자신의 공주를 이방 나라의 왕에게 거의 아내로 주지 않았음
– 솔로몬의 위상이 높았음을 보여주는 증거이자, 이스라엘을 통해 메소포타미아를 견제하고자 한 정치적 이유로 결혼동맹을 맺었을 것
– 솔로몬이 건축한 것의 순서가 자기의 궁, 여호와의 전으로 되어 있는 것도 솔로몬의 주관심이 자기에게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
3:2
산당은 성전건축 이전에 이스라엘의 합법적인 예배처소
– 하나님께서 단 하나의 장소만을 합법적 성소로 명하신 것은 아님
– 레위인들이 48개의 성읍을 받을 것을 보면(수 21장) 최소 48개의 예배처소가 있었다고 봐야 함
3장
솔로몬의 신하들과 솔로몬 왕궁의 과도한 소비.
4:1–6
고관들의 명단
– 다윗 고관들의 명단에서는 군사령관이 제일 먼저 언급된 것에 반해(삼하 8:15–18; 20:23–26), 솔로몬 고관 명단에서는 제사장이 가장 먼저 언급됨
– 하나님께만 절대 순종해야 할 자들이 왕의 신하가 됨
– 왕이 잘못된 길에 들어설 때 신하들의 역할이 중요
– 왕의 신하가 된 이후에도 자신들이 궁극적으로 순종해야 할 존재가 하나님이심을 망각하지 말아야 함
– 서기관은 국가의 문서들을 기록하는 직무를 맡은 사람
– 사관은 어떤 메시지를 전하여 ‘기억하게 하는 사람’
– 아비아달은 유배를 떠났지만 그의 영향력이 여전히 백성들 사이에 존재했을 것이라 추정
– 대신은 원어로 ‘제사장’
– 아사리아와 사붓은 나단 선지자의 두 아들
– 나단의 아들 사붓은 제사장이면서 왕의 친구 역할을 감당
– 왕의 친구는 책사 같은 역할.
4:6
노동감독관이라는 말은 솔로몬 통치의 폭압성을 드러내는 불길한 말 – 솔로몬의 이름의 뜻은 샬롬, 즉 국태민안
4장
5:1–12
성전건축을 준비하는 솔로몬
– 두로왕 히람과의 교역
– 두로는 이스라엘로부터 밀과 올리브를, 이스라엘은 두로로부터 목재와 금을 수입함
– 두로 왕 히람의 물자제공으로 성전건축 시작함
– 하나님의 일을 행함에 있어 이방인들이 일구어 놓은 일반은총을 향유하는 것 가능
– 공격적 배타적 자세를 경계해야 함.
5:1
두로의 첫 전성기는 히람 1세가 다스리던 시기(주전 973–942)로서 이때 다윗과 솔로몬이 통치함
– 다윗이 아람과 블레셋을 제압해 줌으로서 두로는 지중해 교역의 주도권을 확보하게 됨
– 히람이 다윗을 사랑하였다는 말은 정치적으로 좋은 관계에 있었다는 말(삼하 5:11–12)
– 다윗을 따랐다, 계약적 신실성을 지켰다는 말.
5:4
여기 대적은 히브리어로 사탄(민 22:22, 삼상 29:42, 삼하 19:22, 왕상 11:14,23,25).
5:6
레바논의 백향목은 해발 1,500미터 지점에서 약 40m 가량의 높이로 곧게 뻗어 자라는 나무
– 구약에서는 키가 크고, 도덕적 위엄을 갖춘 사람을 묘사할 때 ‘백향목과 같은 사람’이라고 표현(겔 31:3, 암 2:9, 시 92:12, 왕하 14:9).
5:10–12
밀 이만 석은 700만에서 800만 리터에 이르는 양
5장
6:1
성전을 건축하는 솔로몬
– 에뉴마 엘리쉬를 보면 최고 수위권을 차지한 신에게 하위신들이 바치는 선물이 성전
– 성전은 바벨론 포로기 이후 귀향포로들의 영적중심이자 왕조를 대신하는 국가의 상징이 됨
– 성전건축을 한 때가 출애굽 480년, 솔로몬 통치 4년 시브월
– 시브월은 바벨론 포로기 이전에는 이스라엘 월력으로 8월을,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는 바벨론 월력을 따라 2월
– 현재의 태양력으로는 4–5월
– 출애굽 연대에 대한 두 가지 입장
– 보수적, 문자주의적 입장 / 역사적, 진보주의적 입장
– 주전 15세기를 옹호하는 것으로는 아마르나 서신과 성경이 있고, 주전 13세기를 옹호하는 것으로는 람세스 2세 통치라는 애굽의 역사가 있음
– 확실한 것은 주전 13세기 초에는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체가 가나안 땅에 존재했다는 것(주전 1220년경의 메르넵타 비문)
–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한 세대를 40년으로 간주
– 실제로는 25년 정도로 간주할 때, 480년은 실제 300년 정도가 되어 주전 13세기 중반이 된다고 주장하기도 함
– 사건이 내포하는 신앙적 의미나 가치들을 표현하는 신학적 연대기로 보는 것.
6:1
성막과 성전은 연속성 및 불연속성을 가짐
6장
•
13년에 걸쳐 왕궁 건축
– 놋점장 히람을 두로에서 데려와 일하게 함
– 하나님의 집 건축, 하나님의 일을 행함에 있어 이방의 원재료를 사용할 수 있음을 보여줌
– 모세가 건설한 성막의 재료도 이집트의 것
– 물을 담은 바다와 놋받침 10개, 물두멍 10개와 성전기구들.
7:7
솔로몬의 궁에 재판정이 있었다는 것은 왕의 기본적 기능이 백성들의 삶에 공의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올바른 재판임을 보여주는 것.
7:15–22
놋 기둥 두 개
– 오른쪽 기둥을 ‘그가 세운다’는 의미의 야긴, 왼쪽 기둥을 ‘그에게 힘이 있다’는 의미의 보아스라 부름
– 야긴과 보아스는 고대 이방신들의 이름
– 야웨 하나님인 주신을 엄호하는 방식으로 세워둔 것.
7:23–26
놋 물통은 이천 밧(말, 1말은 약 18리터)이나 되는 물을 저장할 수 있는 크기.
7:37–38
놋바다는 성전에서 제사를 주도하는 제사장들이 물로 씻도록 마련
– 물두멍은 제사드리는 자들과 제물들을 정결케 하기 위해 마련
– 제사후 제물들의 피로 얼룩진 제단과 성전 뜰을 깨끗하게 하는데 사용
7장
•
성전봉헌과 솔로몬의 기도
– 가시적, 외형적 성전을 성전되게 하는 핵심은 하나님과의 신실한 언약관계 준수적 삶
– 성전봉헌 기도속의 핵심은 두 가지
– 27의 반성전신학과 기도신학(30,32,34,36,39,43,45,49)
– 이 두 가지를 강조함을 통해 자신이 건축한 성전이 하나님의 자유를 속박하지 않음을 천명함
– 성전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백성을 위한 것임을 강조
– 이후 에스겔을 통해 여호와의 영광이 떠난 성전은 하나의 건물에 불과함을 드러내심(겔 9:3; 10:18; 11:23)
– 바벨론이 무너뜨린 것은 성전이 아닌 하나의 건물.
8:1–11
두 돌판이 담긴 언약궤를 다윗성에서 성전으로 옮김.
8:1–2
에다님 월 곧 칠월 절기는 오늘날로 9–10월에 있는 초막절 절기를 뜻함
– 한해를 시작하는 신년 축제
–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한 시기는 성전을 완성하고 나서 11개월 이후라 추정
– 8:2에서 말하는 7월은 6:38에서 성전이 완성되었다고 말하는 8월보다 11개월이 지난 다음 해라는 주장.
8:8
채는 언약궤를 메도록 길게 나와 있는 막대기.
8장
9:4
네 아비 다윗의 행함 같이(왕하 18:3의 히스기야, 왕하 22:2의 요시야) – 이상 왕의 모델로 제시되는 다윗
– 삼하 8:15의 공의와 정의의 통치자로서의 다윗
– 이후 여로보암에게도 아히야선지자를 통하여 “다윗의 행함 같이 내 율례와 명령을 지키면” 왕국이 번성할 것이라 약속하심(11:38)
– 왕을 비판할 때에는 “그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라는 표현이 사용됨
– 악한 왕의 모델은 여로보암
– “여로보암의 죄(길)에서 떠나지 않았다”는 표현
– 무엇의 모델이 되는가 중요
– 정면교사와 반면교사.
9:6–9
하나님의 전 건축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임을 다시 강조하심(7)
– 성전에 대한 조건부 임재신학이 등장
– 하나님 마음에 합한 정의와 공평의 통치가 있어야만 그 성전에 하나님의 임재가 실제로 가능하다는 것
– 순종하지 않을 시, 하나님께서 친히 성전을 던져 버리겠노라 하심
– 이데올로기화된 성전신학과 시온신학에 대한 도전적 말씀
– 성전이 하나님의 심판을 막아주는 도피처가 되지 못함
9장
•
스바 여왕의 방문과 찬사(8, 복되도다 당신의 신복들이여 항상 당신의 앞에 서서 당신의 지혜를 들음이로다)
– 솔로몬의 세입금의 중수가 666 금달란트(1달란트는 금 30KG, 6000데나리온)
– 잔나비까지 수입(22, ‘솔로몬의 전설’이라는 영화).
10:1–5
스바는 셈의 후손으로 소개되기도 하고(창 10:28, 대상 1:32), 함의 후손으로 언급되기도 함
– 혼합민족이었을 것
– 요세푸스는 스바여왕을 애굽과 에디오피아의 여왕이라 함
– 에디오피아의 국가 전설에 따르면 여왕이 솔로몬과의 만남 이후 야웨신앙으로 개종하였고, 솔로몬과의 사이에서 메넬리크라는 아들이 출생함
– 언약궤 축제, 행 8장의 이디오피아의 내시, 333년의 기독교를 국교로 삼음 – 이슬람교의 코란에는 스바여왕을 태양 숭배자로 소개
– 그녀와 솔로몬이 알라에게 복종했다고 기록.
10:5
층계를 가리키는 ‘올라’는 계단도 되지만 번제물로도 번역 가능(NIV, RSV, 표준새번역)
– 층계는 성직자, 제사장의 권력을 신격화
– 층계로 올라간다는 말은 제사장이 하나님께 좀 더 가까이 간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효과가 있음
– 종교권력의 영속적 공고화를 가지고 올 수 있는 일종의 상징조작
– 오늘날 목회자들만이 집례하는 세례와 성찬(행 10:44–48, 11:12).
10장
•
10장과는 다른 논조로 솔로몬 비판(6)
– 정권의 기반이 약할 때에는 이스라엘을 통치할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였던 솔로몬
– 이후 성전과 궁전 등의 대규모 건축사업을 실시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이방인들을 노예로 부려먹음
– 출애굽 구원의 완전무효화
– 그 모든 일탈의 핵심을 이방여인과의 결혼이라 규정(3)
– 이방여인들을 아내로 맞이하면서 그들의 신전을 지어줌
– 신명기 17장의 왕이 지켜야 할 모든 규례를 위반함(권력을 이용한 재산축척, 다수의 아내소유, 말로 상징되는 군사무기를 구입하기 위해 이집트와 소통하는 것)
–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9) 자기의 길을 걸어가다 결국 왕국분열이라는 심판을 자초함
– 시작과 끝이 동일하지 못했던 사람 솔로몬
– 이 모든 죄에 대해 솔로몬 사후에 심판이 임함(12)
– 솔로몬 시대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되면 다윗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오해될 소지가 있음
– 에돔사람 하닷과 르손이 솔로몬의 대적이 됨
– 에브라임 사람 여로보암이 선지자 아히야에 의해 10지파를 통치할 왕으로 선택받음.
11장
•
이스라엘 분열사
– 엄밀한 의미에서 남북분열이 아니라 왕실분열
– 백성은 분열되지 않음
– 우리 민족의 분열사
– 한국교회 장로교의 분열사
– 분열하기는 쉬워도 하나되기는 어려운 현실.
12:1–5
북이스라엘 지파들과 르호보암 간의 언약재갱신 회합
– 솔로몬이 시행한 유다지파 우호정책에 대해 북이스라엘 지파들의 불만 고조
– 다윗이 헤브론을 중심으로 한 유다지파의 지도자에서 전체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때 북이스라엘 지파 장로들과 약속을 체결(삼하 5:1–3)
– 그 약속을 위반한 솔로몬
– 르호보함에게 그 언약에 충실할 것인지를 다시 물음
– 거부함을 통해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의 분열이 재연
– 다윗의 후광을 이어받은 솔로몬과 솔로몬의 어둠을 물려받은 르호보암.
12장
13:1–10
유다에서 온 선지자가 벧엘의 제단에 대해 심판의 메시지 선포
– 어떻게 공권력에 사로잡히지 않고 이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을까
– 하나님의 선지자에 대한 존경 및 보호의식이 있었을 것
– 요시야의 지방산당제거 예언(2)
– 요시야는 지방산당을 제거하고 예루살렘 중심의 종교정책 시행
– 이때 지방산당을 통해 생활을 영위하던 수많은 사제들이 위기에 처하게 됨
– 여로보암의 벧엘 제단에 대한 비판 논거로 요시야의 종교개혁이 사용됨
– 전형적인 사후예언의 문학적 기법
– 이미 일어난 일을 마치 예전에 예언되었던 것처럼 말하는 방식이 사후예언
– 이 책을 쓰던 당시의 신명기적 신학이 여로보암 당대의 과거를 재해석하고 있다는 말.
13:3
재는 단에 놓여서 태워진 동물 지방의 찌꺼기.
13:8
비판적 메시지를 들어야 하는 대상으로부터 제공받는 예물과 향응은 선지자의 메시지의 의도를 왜곡케 하고, 참된 말씀의 선포를 약화시킬 가능성 높음.
13:18
벧엘의 늙은 선지자는 왜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을 속여 그로 음식을 먹게 하였을까
13장
14:1–4
여로보암이 아들의 병에 대해 아히야에게 묻기 위해 아내를 변장하여 보냄
– 있는 모습 그대로 가게 되면 예언자로부터 부정적인 메시지를 들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
– 자신이 펼친 종교정책의 일탈로 인해 아히야와 사이가 벌어졌을 것.
14:9
백성들이 우상숭배에 빠지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등 뒤로 버리는 것으로 간주하심.
14:11
개에게 먹히고 새에게 먹힌다는 말은 죽음 후 인간으로서 간직해야 할 최소한의 존엄성까지도 상실하게 된다는 것.
14:13–17
여로보암의 아들 아비야의 죽음
– 아비야는 하나님께 선한 뜻을 품은 아이로 그의 죽음에는 대속적 의미가 있다
– 탈무드에 따르면 아비야는 절기때마다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서 제사를 드렸고, 백성들이 내려가는 것을 막기 위해 세워둔 보초병들도 제거했다고 함.
14:16
후대의 북이스라엘로 하여금 잘못된 길로 걸어가도록 만든 여로보암의 원죄
– 원죄에 대한 두 가지 입장.
14:22–24
산당에서 야웨와 바알을 겸하여 섬기는 종교제의가 벌어짐
– 바알신화에 따르면 바알이 죽음의 신 모트에게 패하여 죽어 있을 때 세상은 가뭄과 궁핍에 빠짐
– 바알의 누이 아낫이 모트와 싸워 이기자 바알이 다시 살아나게 되고 아낫과 바알의 성적결합으로 인해 온 세상에 풍요가 회복됨
14장
15:3
아비얌은 여로보암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벧엘과 여사냐, 에브론을 빼앗음(대하 13:19)
– 그러나 이후에 벧엘성소에서 아모스가 사역하는 것을 보면, 완전한 정복은 아닌 듯 보임
– 아비얌은 군사적 업적에서는 성공하였으나 종교적 면에 있어서는 낙제점을 받음
– 예언자의 관점으로 왕들에 대해 평가하고 있는 것이 열왕기의 특징.
15:5
다윗은 밧세바의 일 외에는 여호와 앞에서 정직히 행함
– 밧세바의 일을 끊임없이 언급함을 통해 다윗의 치욕스런 죄악을 고발하고 있는 성경
– 영웅주의 거부
–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살아가기
– 창 39:9의 요셉, 선비들의 신독.
15:9–24
아사는 41년간 통치
– 마지막 기간은 아들 여호사밧과 섭정을 하였을 것
– 이유는 발의 병 때문(23)
– 외국 군대를 끌어들인 것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15장
열왕기상 16장
•
아합왕(16:29–22:40)
– 최상의 모습과 최악의 모습을 포괄하고 있는 패러독스 덩어리인 인간의 전형
– 인간은 비록 악당이라고 해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순진하고 단순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한 대목)
– 아합에 대한 성경외적 자료는 853년의 카르카르 전투와 모압왕 메사의 석비
– 앗수르 문헌에 의하면, 앗시리아에 맞선 시리아–팔레스타인 연합군에서 이스라엘의 아합 왕은 병거 2,000대와 병사 10,000명을 파병
– 북이스라엘은 평야가 많으므로 병거가 유용하고 남유다는 평야가 거의 없으므로 병거가 별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함
– 메사의 석비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 “오므리는 이스라엘 왕이었으며 많은 날 동안 모압을 억압했다. 이는 그모스가 자기 땅에 대해 분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아들이 그를 계승하여 말하기를 ”나는 모압을 억압하리라!“
– 오므리왕조가 인근지역을 지배했음을 보여줌
– 분열된 왕국이 이 정도 힘을 가졌다면 분열되기 전 다윗왕국이 그 주변 왕국을 지배했다고 하는 것이 조금도 이상한 것이 아님.
16:1–7
여로보암 왕조를 무너뜨린 바아사도 하나니의 아들 예후로부터 하나님의 심판 경고를 듣고 죽음
– 자신이 무너뜨린 자의 전철을 그대로 밟은 왕 바아사.
16:4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죽은 자의 시신이 어떻게 처리되는가 하는 것이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은 자인지, 저주를 받은 자인지를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 됨.
열왕기상 17장
•
북이스라엘의 예언자로 엘리야가 등장함
– 북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버림받은 공동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의 대상임을 드러냄
– 엘리야 이야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엘리야를 모세와 관련하여 기술하고 있다는 것
– 엘리야를 모세의 영적 계승자로 강조함
– 하늘로부터 공급받은 음식(만나와 까마귀로부터 공급받은 떡과 고기), 하나님의 산에서의 신 현현 경험, 왕권과의 대결, 열 두 돌로 단을 쌓고 번제를 드림(왕상 18:31; 출 24:4), 바알선지자들을 살해하고 도피(애굽의 군인을 죽이고 도피한 모세), 사명을 받은 자와 완수한 자의 불일치, 후계자의 위임과 알 수 없는 무덤, 홍해와 요단강을 마른 땅처럼 건넘
– 17장의 주제는 누가 비를 내리게 하는가, 누가 일용할 양식을 제공하는가, 누가 생명을 주관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바알이 아닌 오직 하나님이심을 강조하는 것.
17:1–7
그 시대의 관심사는 비, 풍요, 생산성
– 비의 신, 폭풍우의 신인 바알은 천둥과 번개의 신 ‘하닷’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으며 풍요와 다산의 신
– 바알숭배는 풍요와 다산을 신적가치로 여기는 것
– 자유농민의 땅을 빼앗아 거대지주들이 등장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신(21장)
– 자유농민들을 소작인화 시키는 대지주가 대 수출 조방농업을 경영하여 외화를 벌어들이고, 귀중품이나 사치품을 수입함으로써 소비수준을 높이는 것이 오히려 더 풍요롭다는 인상을 줌
– 바알과 아세라 숭배의 사회경제적 함의
– 미 6:16의 ‘오므리의 율례’
17장
열왕기상 18장
•
혈혈단신 바알사제와 맞서는 엘리야의 기풍
– 풍요의 신 바알을 숭배하면 할수록 이스라엘은 가뭄과 저주의 땅으로 고통 받음
– 풍요를 추구할수록 삶은 더 빈곤해 짐
– 번영과 풍요를 공평과 정의, 순종의 삶보다 앞세우는 자들이 이 시대의 바알주의자들.
18:3–6
온 백성이 기근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는 시간, 아합은 자신의 가축 먹일 물을 찾아 나섬
– 한 나라의 왕이 백성들의 형편을 살피기보다 자기 말과 노새 걱정을 먼저 하는 모습.
18:4
여호와의 선지자를 죽이는 일에 주도자는 이세벨(18:13; 19:2)
– 아합은 이세벨의 바알종교 강화와 야웨종교 박해를 수동적으로 방조한 자이지 적극적으로 동조하거나 주도한 것은 아님
– 18장에서의 갈멜산 결투가 그 증거
– 만약 바알종교 옹호자였다면 엘리야를 잡아 처형했을 것
– 아합에게 있어 종교와 신은 자신의 세속적 성공을 돕기 위한 하나의 수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
– 아합은 이기는 신을 선택하고자 하였을 것.
18:7–15
궁내대신 오바댜를 통해 아합에게 영적전쟁을 제안하는 엘리야
열왕기상 19장
•
영적 영웅 엘리야의 낙담과 탈진
– 아드레날린 과다분비 우울증
– 이세벨의 위협에 도망 다니는 엘리야
– 큰 영적전쟁에서 승리한 후 낙담에 빠져 자신의 생명을 가져가기를 간구함(4)
– 영적자만을 경계하고(10 – 오직 나만 남았거늘), 하나님이 남겨두신 남은 자 칠천 명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함(18).
19:1
‘고했다’는 말은 ‘보고했다’는 말
– 이세벨이 갑이고 아합은 을
– 아합이 악한 왕이 된 주요 이유 중 하나는 바알신앙으로 무장된 이세벨을 아내로 얻어 그녀의 다스림 앞에 굴복한 것(왕상 18:1,4; 왕하 9:22)
–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를 죽이고자 할 때 반대하지 못함 – 돕는 배필의 역할 포기
– 누구를 배우자로 선택하는가 하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
– 건강한 부부는 잘 싸우는 부부
– 갈등과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속에서 상호성장과 성숙을 맛보는 부부.
19:3–4
‘보고’는 사태를 종합적으로 파악하는 행위로서 ‘두려워했다’로도 번역 가능(RSV, NIV, 표준새번역)
열왕기상 20장
•
헤렘법을 어기고 왕실의 사적이익을 위해 아람왕을 살려준 아합왕을 규탄하는 예언자
– 20장에서의 전쟁의 승리가 모두 여호와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얻어짐(13,14,28).
20:1
하사엘의 아들인 벤하닷은 다메섹의 왕
– 그가 32명의 다른 아람왕들과 함께 사마리아를 공격함
– 아람이 여전히 도시국가들로 구성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
20:9–10
군인들이 너무 많아서 개인이 취할 수 있는 노획물이 부족하게 될 것이라고 말함.
20:11
갑옷 입은 자가 갑옷 벗는 자같이 자랑치 못할 것이라는 말은 고대의 격언으로, ‘참 군인은 갑옷을 입을 때에 자랑하지 아니하고, 갑옷을 벗을 때에 자랑하는 법이다’는 뜻
– 갑옷을 벗기 전에 함부로 승리를 장담하거나 자랑하지 말라는 말
– 길고 짧은 것은 대보아야 한다는 것으로서 싸움도 하기 전에 승리감에 도취하지 말라는 의미.
20:15
232명의 지방장관들의 군대와 7,000명의 병사들 소집
– 유대인들의 전통에 따르면 7,000명 뒤에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이라는 말을 덧붙임(19:18)
– 지방장관들의 군대는 직업군인들로서 다윗시대부터는 이 두 종류의 군대로 편성.
20:22–34
아람과의 두 번째 전쟁에서도 승리하는 아합
열왕기상 21장
•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은(약 1:15) 사건
– 미쉬파트와 체데크의 구현자가 되어야 할 왕이 자기권력을 이용하여 사적이익을 취함
– 국제주의적 종교문화의 선봉장인 이세벨이 전통 야웨 신앙의 수호자인 나봇을 살해하고 영토를 강탈함
–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언약관계의 증표가 땅
– 사 60:21의 ‘네 백성이 다 의롭게 되어 영원히 땅을 차지하리니’
– 나봇은 언약 전통의 보수적 지지자
– 나봇의 포도원을 강탈하는 일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언약관계를 파괴하는 것으로 이 사건의 주역은 이세벨
– 땅이 어느 누구도 아닌 오직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상은 토지소유에 대한 왕의 전제적 권력을 무효화하는 선언
– 율법이 이방여인과의 통혼을 반대한 것은 이스라엘 자유농민의 토지소유권을 위협하기 때문.
21:1
이스르엘에는 아합왕의 겨울궁이 있었음
– 수도 사마리아보다 300m 정도 낮은 곳이기에 겨울에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곳.
21:2
아합은 정당한 절차를 통해 자신의 궁 옆에 있는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고자 함
– 이스라엘 내에서 밭을 사거나 서로 바꾸는 일은 흔히 있는 일(잠 27:36; 31:16; 렘 32:6–15)
열왕기상 22장
•
20장의 아람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아람 왕 벤하닷은 부친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은 땅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하였으나(20:34) 그 약속을 이행하지 않음
– 아합이 여호사밧과 연합하여 길르앗 라못을 되찾기 위해 아람을 공격하고자 함
– 거짓말하는 영에 충동된 400여명의 선지자는 승리를 예언하고, 참 선지자 미가야는 아합의 죽음을 예언
– 미가야의 예언을 무시하고 전쟁터로 나아가는 아합
– 그러나 변장을 한 것은 아합이 미가야의 예언에 대해 어느 정도 의식했음을 보여주는 증거
– 의식은 하였으나 전적 신뢰로 나아가 순종하지는 못한 것.
22:1
아람은 앗수르의 공격을 막느라 전력을 쏟음으로 인해 이스라엘을 3년간 공격하지 않음
– 853년의 카르카르 전투에 아합도 참여.
22:2
아합과 여호사밧은 결혼동맹을 체결
– 아합의 딸 아달랴와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이 결혼
– 당시 여호사밧은 에돔을 정복하여 속국으로 만들고 에시온게벨을 회복하여 국제교역통로를 회복하고 있었음
– 두로는 이스라엘로부터 식량을, 이스라엘은 두로로부터 목재와 금, 기타 물품들을 수입함
– ‘내려가매’라는 표현은 열왕기 기자가 예루살렘을 기준으로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
열왕기하 1–5장
•
역사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자들의 어리석음
– 사사시대와 같이 열왕기 시대도 나선형 하강곡선
– 야웨 하나님과 바알이 이스라엘의 왕권을 놓고 대결하는 양상.
열왕기하 1장
•
아합과 이세벨의 아들 아하시야의 등극
– 모압의 반란과 독립
– 경제적 위축
– 아하시야의 추락
– 자신의 병에 대해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묻고자 함
– 하나님 무시적 행위
– 엘리야는 아하시야의 사신들에게 아하시야의 죽음을 예고함
– 엘리야를 잡으러 보낸 오십부장과 오십명의 군사가 두 번에 걸쳐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음
– 하나님의 사람 선지자 앞에 무릎 꿇은 세 번째 오십부장은 생명을 보존함.
열왕기하 2장
•
엘리야와 엘리사의 여행 이야기
– 길갈, 벧엘, 여리고, 요단강, 여리고, 벧엘
– 엘리야의 승천(비신성화)과 영감을 갑절로 받은 엘리사.
2:2
엘리야를 따르고자 하는 엘리사의 집념
– 나오미에 대한 룻의 고백과 유사
–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기름 부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를 제자로 선택하였지만 그를 계승자로 확정한 것 같은 느낌은 주지 않음
– 대신 엘리사가 적극적으로 엘리야의 사역을 계승하고자 하는 열망을 드러냄
– ‘혼’은 육체와 구별되는 영혼이 아닌 사람 전체를 나타내는 ‘네페쉬’라는 단어
– ‘당신의 혼의 삶’이라는 번역보다는 ‘당신의 사심’이 더 좋은 번역
– 구약에서는 영혼과 육체를 거의 구분하지 않음
– 시편의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말도 영혼과 육체가 포함된 존재 전체가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의미.
2:3
생도들은 원어로 ‘아들들’이라는 의미로 선지자들의 구성원 또는 학생이라는 뜻
– 성가대원을 ‘성가대의 아들들(느 12:28)’로, 문지기들을 ‘문지기들의 아들들(스 2:42)’로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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