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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21장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은(약 1:15) 사건
– 미쉬파트와 체데크의 구현자가 되어야 할 왕이 자기권력을 이용하여 사적이익을 취함
– 국제주의적 종교문화의 선봉장인 이세벨이 전통 야웨 신앙의 수호자인 나봇을 살해하고 영토를 강탈함
–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언약관계의 증표가 땅
– 사 60:21의 ‘네 백성이 다 의롭게 되어 영원히 땅을 차지하리니’
– 나봇은 언약 전통의 보수적 지지자
– 나봇의 포도원을 강탈하는 일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언약관계를 파괴하는 것으로 이 사건의 주역은 이세벨
– 땅이 어느 누구도 아닌 오직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상은 토지소유에 대한 왕의 전제적 권력을 무효화하는 선언
– 율법이 이방여인과의 통혼을 반대한 것은 이스라엘 자유농민의 토지소유권을 위협하기 때문.
21:1   이스르엘에는 아합왕의 겨울궁이 있었음
– 수도 사마리아보다 300m 정도 낮은 곳이기에 겨울에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곳.
21:2    아합은 정당한 절차를 통해 자신의 궁 옆에 있는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고자 함
– 이스라엘 내에서 밭을 사거나 서로 바꾸는 일은 흔히 있는 일(잠 27:36; 31:16; 렘 32:6–15)
– 나봇은 이 포도원이 아버지의 유산이기 때문에 넘겨줄 수 없다고 주장(삼상 26:11; 삼하 23:17)
– 친족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포도원을 팔 수 없음(레 25:23; 민 27:1–11; 36:7).
21:4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함부로 빼앗지 않는 것을 보면, 이때까지만 해도 모세의 율법에 명시된 법들을 왕도 함부로 위반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음
– 하나님의 법을 지키고자 분투하는 나봇을 칭찬해주지 못할망정, 자신의 뜻에 순응하지 않음으로 인해 불편한 마음을 드러냄
– 이 일로 인해 이세벨이 나봇을 죽여 아합의 욕심을 충족시켜 줌.
21:5–6   아합은 이세벨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과정속에서 ‘아버지의 유산’이라는 말을 제외하고 나봇이 이유 없이 왕의 제안을 거절한 것처럼 전달
– 이세벨이 실세.
21:7   ‘왕이 이제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나이까’라는 말은 ‘왕이 이런 식으로 밖에 이스라엘을 다스리지 못합니까(NIV)’, ‘당신이 지금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있는 것입니까(RSV)’라는 말.
21:8   귀인(호림)은 셈족어에서는 ‘자유롭게 태어난 자’, ‘자유인’을 의미하고 히브리어에서는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는 자’라는 의미
– 나봇은 이스르엘의 유력자
– ‘나봇과 함께 사는’을 NEB는 ‘그와 함께 법정에 앉았던’으로 번역.
21:11–13   권력에 의해 자행된 사법범죄
– 악의 카르텔을 형성한 정치권력과 사법권력, 그리고 종교권력
– 이세벨은 이스라엘의 법을 숙지하고 있었음
– 금식선포를 통해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
– 거짓증언을 세워 하나님과 왕을 저주한 것처럼 주장
– 율법에 근거하면 사형에 처해야 할 범죄(레 24:13–16; 출 22:28)
– 자신들의 삶 자체가 하나님을 저주하는 삶임을 자각하지 못함.
21:15–16    일반적으로 처형당한 자의 재산은 왕에게 돌아감
– 이세벨의 행위에 대해 어떤 문제제기도 하지 아니하고 수동적으로 순응하며 이익을 챙기는 아합의 죄
– 이세벨의 계략도, 나봇의 죽음의 원인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하지 아니하고 자기가 원하던 것을 취하게 되어 기뻐하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드러냄.
21:20,25   ‘아합이 스스로 팔렸다’는 것은 ‘––하도록 자기 자신을 팔았다’는 의미로 아합의 책임을 훨씬 더 크게 부각시키는 표현
– 의도적으로 악을 행하기를 선택했다는 말.
21:25    아내 이세벨에게 충동되어 악행을 저지른 아합
– 건강한 돕는 배필이 되어야 함.
21:27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간직했던 아합왕
– 막무가내식의 악인은 아님
– 보편적 인간에게서 발견되는 최상과 최악의 모습을 다 간직한 인물.
21:29   여호와의 책망에 겸비함을 보인 아합
– ‘행보도 천천히 한지라’는 말을 표준새번역 개정판에서는 ‘거닐 때 슬픈 표정으로 힘없이 걸었다’로, RSV는 ‘낙심하여 걸었다’로 번역
– 구약성서의 아람어 번역판인 탈굼은 ‘맨발로 걸었다’라고 번역
– 하나님께서는 죄를 혐오하시지만, 언제든 회개하는 자에 대해서는 긍휼을 베푸시는 분
– 이 본문을 가지고 연좌제를 옹호하는 경향이 있음
– 신 24:16; 겔 18:20; 출 20:5–6
– 아합은 회개했으나 아합의 아들이 그 죄된 길을 지속할 때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
– 또 한번의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