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1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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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영웅 엘리야의 낙담과 탈진
– 아드레날린 과다분비 우울증
– 이세벨의 위협에 도망 다니는 엘리야
– 큰 영적전쟁에서 승리한 후 낙담에 빠져 자신의 생명을 가져가기를 간구함(4)
– 영적자만을 경계하고(10 – 오직 나만 남았거늘), 하나님이 남겨두신 남은 자 칠천 명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함(18).
19:1 ‘고했다’는 말은 ‘보고했다’는 말
– 이세벨이 갑이고 아합은 을
– 아합이 악한 왕이 된 주요 이유 중 하나는 바알신앙으로 무장된 이세벨을 아내로 얻어 그녀의 다스림 앞에 굴복한 것(왕상 18:1,4; 왕하 9:22)
–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를 죽이고자 할 때 반대하지 못함 – 돕는 배필의 역할 포기
– 누구를 배우자로 선택하는가 하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
– 건강한 부부는 잘 싸우는 부부
– 갈등과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속에서 상호성장과 성숙을 맛보는 부부.
19:3–4 ‘보고’는 사태를 종합적으로 파악하는 행위로서 ‘두려워했다’로도 번역 가능(RSV, NIV, 표준새번역)
– 이세벨의 명령 한 마디가 지배하는 현실을 보고 낙담하며 도망가는 엘리야
– 극한 탈진과 우울감에 빠져 홀로 있기를 원하는 엘리야
– 유대인들의 전통은 엘리야가 브엘세바로 갈 때 그와 함께 간 사환이 있는데 그를 사르밧 과부의 아들로 봄
– 무엇을 보느냐,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별 것 아닌 것도 엄청 크게 보이고, 엄청나게 큰 것도 아무렇지도 않게 볼 수 있음
– 신앙은 역동적 현실인식의 능력
– 하나님 앞에서 모든 것들을 상대화시킴
– 베드로의 말(행 4:19).
19:4 자살지향적 기도를 드리는 엘리야
– 모세(민 11:15), 예레미야(렘 20:14–18)도 비슷한 탄식을 함
– 극단적 우울증에 빠진 자의 모습과 유사함
– 처지 한탄, 홀로 있고자 함, 자신과 남의 비교, 열등감 표출, 자살 충동
– 엘리야는 극단적 우울감에 빠져 있으면서도 하나님께 기도하던 사람
– 로뎀나무는 최대 150cm이고, 나무 잎이 넓지도 많지도 않음
–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지 못하는 나무.
19:5–7 탈진한 엘리야를 먹이시고 재우시는 하나님
– 영은 육체의 상태와 밀접한 연관을 지님
– 숯불에 구운 떡은 ‘뜨겁게 달군 돌에 구워 낸 과자’라는 뜻
– 사 6:6의 ‘핀 숯’은 ‘불에 달군 돌’을 뜻함.
19:8 비평학자들은 하나님을 엘로힘으로 부른 무리들은 호렙산이라고 부른 반면, 하나님을 야웨로 부른 무리들은 시내산으로 불렀다고 이해함.
19:10 열심(카나)은 ‘질투’로 해석 가능
– 예언자의 절대고독과 무력감
– 한 두 번의 은총으로 회복될 수 없는 뿌리 깊은 영적 함몰
– 홀로 분투하고 있다는 영적 교만함과 외톨이 의식을 경계해야 함
– 동역자를 만나고자 하는 강렬한 소망과 의지 필요
– 멸망 받은 여리고성 안에도 새로운 시대를 갈구하는 라합 같은 여인이 존재함.
19:11–12 바람과 지진과 불은 바알의 현현을 묘사할 때 사용되던 개념들 – 하나님은 세미한 소리를 통해 자신을 계시하심
– 세미한 음성은 침묵과 소리의 경계
– 불과 바람과 지진과 같은 역동적 활성화된 모습이 아닌 세미한 소리로 말씀하시는 하나님
– 하나님의 음성을 지극히 세밀하게 분별할 수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하나님의 뜻은 매개되고 실현되는 것
– 세미한 소리는 현실세계속에서 미약하게 느껴짐
– 겨자씨나 누룩과 같은 것
– 바알종교와 야웨종교의 차이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건.
19:15–18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사명을 부여받은 엘리야
– 인간은 사명과 의미와 책임감을 연료로 태우며 달려가는 존재
– 새로운 사명을 주심으로 탈진과 자기연민에 빠져 있는 엘리야를 치료하심
– 17의 하사엘은 바알우상들을 섬기는 자들을 심판하기 위해 사용된 아람왕
– 엘리사를 자신을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는 말씀을 통해 바알종교와의 싸움이 자기 당대에 끝날 수 있는 싸움이 아니라 오랜 세대를 두고 완성되어야 할 일임을 깨달음.
19:18 의인들은 삶 속에 흩어져 있기에 하나님은 그들의 수를 세시지만 우리는 칠천 명의 현존을 잘 보지 못함
– 칠천 명은 하나님의 동선을 대리하는 보이지 않는 교회.
19:19–20 열 두 겨리의 소가 있었다는 것으로 볼 때 엘리사는 부유한 가문의 사람이었을 것
– 어떤 학자들은 한 동네 사람들이 협동하여 밭을 갈고 있었던 장면으로 보기도 함
– 엘리야가 입은 겉옷은 양이나 가축의 표피로 만든 가죽옷인데 가축의 털을 보전한 것으로 보임(왕하 1:8, 슥 13:4, 마 3:4)
– 스가랴 시대에는 예언자로 자처하기 위해 털옷을 입기도 함
– 겉옷을 전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성품이나 권세를 전해 주는 것으로 간주됨
– 고대 앗수르에서 왕을 위한 정결의식을 행할 때 왕 대신에 그의 겉옷을 가지고 의식을 진행하기도 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