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earch

태그
열왕기상 16장
아합왕(16:29–22:40)
– 최상의 모습과 최악의 모습을 포괄하고 있는 패러독스 덩어리인 인간의 전형
– 인간은 비록 악당이라고 해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순진하고 단순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한 대목)
– 아합에 대한 성경외적 자료는 853년의 카르카르 전투와 모압왕 메사의 석비
– 앗수르 문헌에 의하면, 앗시리아에 맞선 시리아–팔레스타인 연합군에서 이스라엘의 아합 왕은 병거 2,000대와 병사 10,000명을 파병
– 북이스라엘은 평야가 많으므로 병거가 유용하고 남유다는 평야가 거의 없으므로 병거가 별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함
– 메사의 석비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 “오므리는 이스라엘 왕이었으며 많은 날 동안 모압을 억압했다. 이는 그모스가 자기 땅에 대해 분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아들이 그를 계승하여 말하기를 ”나는 모압을 억압하리라!“
– 오므리왕조가 인근지역을 지배했음을 보여줌
– 분열된 왕국이 이 정도 힘을 가졌다면 분열되기 전 다윗왕국이 그 주변 왕국을 지배했다고 하는 것이 조금도 이상한 것이 아님.
16:1–7   여로보암 왕조를 무너뜨린 바아사도 하나니의 아들 예후로부터 하나님의 심판 경고를 듣고 죽음
– 자신이 무너뜨린 자의 전철을 그대로 밟은 왕 바아사.
16:4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죽은 자의 시신이 어떻게 처리되는가 하는 것이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은 자인지, 저주를 받은 자인지를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 됨.
16:10   바아사의 아들 엘라는 시므리에게 암살당함
– 암살당할 때 궁내대신 집에서 술에 취해 있었다고 말하는 것으로 볼 때(9), 엘라의 평소의 삶이 어떠했는지 짐작 가능함.
16:15   깁브돈은 24년 전에 나답 왕이 통치할 때 블레셋에 넘어감(15:27).
16:19   7일 천하를 끝내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 시므리
– 시므리가 죽을 때 디르사궁의 일부가 소실되었으므로 오므리는 사마리아에 새 궁을 건설함
– 시므리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범죄함”으로써 비참한 종말을 맞이함
– 이 평가는 시므리의 인생 전체에 대한 평가.
16:21–28   시므리 사후 디브니와 오므리 사이의 내란
– 오므리가 승리함
– 오므리가 남왕국 아사 왕 31년에 왕이 되어 12년을 통치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23), 아합이 왕이 된 것은 아사 왕 38년(29)
– 그렇다면 오므리는 7년만 통치한 것이 아닌가
– 아사왕 27년에 시므리가 죽음(15)
– 내란이 4년간 지속되었는데, 이 기간도 통치기간으로 계산한 것
– 오므리는 수도를 사마리아로 이전
– 성경외 기록에서도 오므리에 대한 방대한 기록이 있음
– 오므리는 지중해 연안(두로/시돈 지역)과 홍해 연안(아카바 만)을 잇는 국제 무역 노선을 활용하여 단기간에 나라를 부흥시킴
– 그러나 성경에서는 고작 8절만 기록됨
– 세상의 판단과 하나님의 판단이 다름을 보여주는 증거
– 하나님의 판단에서 승리하는 자가 되어야 함.
16:24    주위 계곡보다 100m 정도 높은 사마리아 언덕 위에 수도를 건설 – 군사적으로 방어하기에 좋을 뿐 아니라 서쪽으로 넓은 해안평야를 바라볼 수 있는 경관도 뛰어난 곳.
16:25–28   모압의 석비에 따르면 오므리는 모압을 정복한 후 오랜 기간 조공을 받아냄
– 모압왕 메사는 새끼 양 십만의 털과 수양 십만의 털을 바침(왕하 3:4)
– 앗수르의 기록에는 이스라엘을 ‘오므리의 땅’이라 기록
– 오므리 사후 140–150년이 지난 주전 733년까지 계속.
16:31    오므리는 시돈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과 자신의 아들 아합을 결혼시킴을 통해 국제교역 라인을 확보하고자 함
– 엣바알은 주전 887년에 정권을 잡고 32년간 다스리며 두로의 두 번째 황금기를 연 왕.
16:34    벧엘 사람 히엘의 여리고 재건사업이 아합의 죄에 대한 기술의 연장선상에서 기록된 것을 보면, 아합이 히엘의 재건사업을 지원했을 가능성이 높음
– 여호수아의 경고(수 6:26)를 무시하고 재건사업을 벌인 것을 보면, 당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반역의 기운이 충만했다는 증거
– 아합시대때 북이스라엘이 예루살렘 관문인 여리고를 장악
– 유다는 여리고까지도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조그마한 한 지파 국가로 축소.
*** 왕상 17장부터 왕하 10장까지를 엘리야 엘리사 싸이클이라 함 – 민중친화적 예언자인 엘리야와 엘리사 – 백성들의 일상의 삶을 돌보고 보살핀 예언자의 모습 – 예언자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를 확장시켜 줌 – 엘리야 엘리사에 의한 바알주의와의 투쟁사 – 삼자연합에 의해 진행됨 – 종교개혁군주인 예후라는 정치가, 레갑족속의 여호나답이라는 재야 종교세력, 요아스왕의 제사장 여호야다라는 제도권 종교지도자의 합작 – 이 삼자연합에 의해 바알세력 잔당 척결작업이 진행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