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명기역사서인 열왕기서
– 당대 청중들에게 무엇인가를 말하고자 하는 설교적 관심으로 쓰인 역사서
– 쓰여진 시기 그 당시의 주관심이 투사될 수밖에 없음
– 모든 역사는 이해당사자의 관점을 반영한 역사
– 형식상 장르는 역사서이고 내용 장르는 설교
– 앗수르 왕들의 원정기록을 보면, 앗수르가 전쟁에서 패했다는 기록은 없음 – 사관의 애국심이 반영된 것
– 예언자적 역사해석은 하나님 원인론적 역사해석이며 신명기적 역사해석
– 하나님의 목적과 뜻을 잘 분별하는 것이 사실 충실성보다 더욱 중요
– 선조들의 불순종을 부각시킴을 통해 당대의 청중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도록 권고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록됨
– 다윗통치 말기(주전 970)부터 유다 유배와 여호야긴의 석방(주전 560)까지의 400년간의 역사적 사건을 예언자적인 관점으로 기록
– 객관적 역사 기술이 아닌 신앙의 관점에서 해석된 역사임
– 본문안에서 역사기록의 사실성을 추구하기 보다는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신앙적 교훈들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
2.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세 가지 입장
– 성경 역사성 최대 인정주의자(성경기록의 역사성을 최대한 인정하는 사람들), 성경 역사성 최소 인정주의자(성경기록의 역사성을 최소한 인정하는 사람들), 이스라엘 역사는 없다는 니힐리스트(이스라엘 역사는 신앙고백으로 쓰인 역사이기 때문에 순전한 의미의 역사는 아니라며 특수한 성경의 부분이 지닌 역사성을 아예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
– 마틴 노트는 ‘모세 없다’주의
– 우리가 아는 모세는 부풀려진 모세이고 성경안에서 만들어진 모세
– 알트–노트 학파는 족장시대 역사는 인정하지 않고 사사시대부터 인정
– 핀켈스타인은 오므리 왕조의 치적을 다윗왕조의 치적으로 전환하였다 주장하며 다윗 왕실을 인정하지 않음
– 1993년에 시리아 연안에서 주전 9세기경 모음이 찍히지 않은 ‘베트 다윗’이라 쓰인 단 석비가 발견(베트 다빗이 아닌 베트 도드, 즉 도드의 신전으로 읽기도 함)
– 고고학적 증거의 부재를 역사의 부재로 이해하는 것은 위험
– 주전 11세기의 주나라가 그렇게 강력한 나라라면 왜 고고학 자료가 없는가
– 벨하우젠은 모세오경안에 주전 5세기의 유대교가 출범할 때의 분위기가 반영되어 있다고 봄
– 지금 구약성경은 고대에 관한 책이 아니라 주전 5세기경의 유대교에 관한 책이라 주장
–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부단한 대화.
3.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열왕기의 저자를 예레미야로 봄
– 유명한 예언자나 왕에게 영예를 돌리는 관습에서 유래
– 그러나 열왕기안에 예레미야 사후에 발생했던 문제들도 언급되어 있음
– 최종 기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음
– 공동체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하나님의 계시를 선포하였던 다양한 인물들에 의해 단편적으로 기록되어졌다고 추측
– 열왕기가 참고했던 자료는 크게 세 가지
–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 유다 왕 역대지략, 솔로몬의 행장(왕상 11:41)
– 최종완성 된 시기는 여호야긴이 석방된 것이 기록되어 있고, 고레스의 칙령이 언급되지 않는 것으로 볼 때 주전 560년에서 539년 사이에 기록되어졌을 것이라 여겨짐.
4.
열왕기는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한 권이었으나 70인역 에서부터 두 권으로 나뉨
– 70인역에서는 왕국 3서와 왕국 4서로 명명되었고, 벌게이트에서 열왕 3서와 열왕 4서로 명명됨
– 히브리어 사본이 두 권으로 나뉘어진 것은 15세기 사본부터
– 서술의 방식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한 왕의 업적을 소개하고 당시 남유다 왕의 업적을 소개한 후에 다시 북왕국 다른 왕의 업적을 소개하는 형식을 취함
– 왕들의 업적을 소개할 때는 공통적 패턴을 유지
– 서론적 형태로 왕의 이름과 즉위 연대, 왕이 즉위할 때의 나이(유다 왕의 경우), 즉위 기간과 장소, 왕의 모친의 이름(유다 왕의 경우), 신앙적인 평가를 하고 그 다음 즉위기간의 사건들을 서술한 후, 결론적 형태로 왕의 통치와 관련한 다른 자료들 언급, 죽음과 장사에 관한 언급, 계승자에 대한 언급을 함.
5.
열왕기의 내용구분
A 솔로몬왕국의 역사와 몰락(왕상 1–11장)
B 여로보암과 북왕국의 분리(왕상 12–14장)
C 유다 왕들과 이스라엘의 왕들(왕상 15:1–16:21)
X 오므리왕조의 바알숭배(왕상 16:22–왕하 12:21)
C’ 유다 왕들과 이스라엘의 왕들(왕하 13–16장)
B’ 북왕국의 멸망(왕하 17장)
A’ 유다 왕국의 역사와 멸망(왕하 18–25장)
– 열왕기의 기간 400년 중 1/10밖에 되지 않는 오므리왕조에 대해 전체분량의 1/3가량을 집중 조명
– 이스라엘의 참 신은 여호와인가, 바알인가가 첨예하게 갈등한 시기가 오리므리왕조.
6.
열왕기에는 총 12명의 예언자가 등장
– 성실하게 임대료를 납부하지 않은 이스라엘을 책망하면서 멸망의 길로부터 이스라엘을 돌이키고자 한 돕는 자들
– 예언자들의 사역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멸망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수고하고 애쓰신 증거들
– 예언의 본질.
7.
이스라엘의 왕(19명)
– 여로보암, 나답, 바아사, 엘라, 시므리, 오므리, 아합, 아하시야, 여호람, 예후, 여호아하스, 요아스, 여로보암 2세, 스가랴, 살룸, 므나헴, 브가히야, 베가, 호세아.
8.
남유다의 왕(20명)
– 르호보암, 아비야, 아사, 여호사밧, 여호람, 아하시야, 아달랴, 요아스, 아마샤,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므낫세, 아몬, 요시야,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
– 주전 922/921년 통일 이스라엘 분열 후 북왕국은 200년간 독립국가로 존속, 9차례 왕조 교체, 평균 재위기간 10년, 남유다는 335년 존속, 19명의 남자와 1명의 여왕 통치, 평균 재위기간 17년
– 북왕국이 남유다에 비해 모든 것이 5배 가량 막강하였는데 시내산 계약의 불이행으로 말미암아 먼저 멸망함
– 불순종의 대파국을 보여줌.
1.
왕들을 평가할 때 핵심은 성전건축에 기여한 정도와 성전예배를 준수한 여부
–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모두 실제적 다종교 사회
– 이스라엘 백성에게 야웨신앙은 바알, 아세라, 밀곰, 그모스 등의 고대근동 우상들과 경쟁하는 여러 신중 하나였음
– 열왕기가 쓰여질 때 왕들의 군사적 업적을 강조하게 되면 바벨론 체제와 페르시아 체제와 충돌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도 성전중심의 기술을 한 이유 중 하나일 수 있음
– 다윗의 통치에 현격하게 미달되는 왕들의 몰락 이야기가 바로 열왕기
– 유다왕국의 회복 근거는 사무엘하 7장의 다윗언약(삼하 7:12–16).
2.
이스라엘 지도체제의 변화
– 모세, 여호수아의 전체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리더십에서 지도력이 축소된 사사시대
– 중앙집권적인 왕정 도래
– 사울 죽음 이후에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의 분열
– 다윗과 솔로몬의 통일 이스라엘
–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의 재분열
– 두 왕실 체제
– 포로기 이후 대제사장이 다스리는 신정체제
– 대제사장이라는 직함은 포로기 이후의 것
– 각 지역별 성소마다 각각의 제사장이 있었지 제사장들의 최고 직위를 갖는 대제사장이라는 직책이 포로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