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2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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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장의 아람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아람 왕 벤하닷은 부친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은 땅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하였으나(20:34) 그 약속을 이행하지 않음
– 아합이 여호사밧과 연합하여 길르앗 라못을 되찾기 위해 아람을 공격하고자 함
– 거짓말하는 영에 충동된 400여명의 선지자는 승리를 예언하고, 참 선지자 미가야는 아합의 죽음을 예언
– 미가야의 예언을 무시하고 전쟁터로 나아가는 아합
– 그러나 변장을 한 것은 아합이 미가야의 예언에 대해 어느 정도 의식했음을 보여주는 증거
– 의식은 하였으나 전적 신뢰로 나아가 순종하지는 못한 것.
22:1 아람은 앗수르의 공격을 막느라 전력을 쏟음으로 인해 이스라엘을 3년간 공격하지 않음
– 853년의 카르카르 전투에 아합도 참여.
22:2 아합과 여호사밧은 결혼동맹을 체결
– 아합의 딸 아달랴와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이 결혼
– 당시 여호사밧은 에돔을 정복하여 속국으로 만들고 에시온게벨을 회복하여 국제교역통로를 회복하고 있었음
– 두로는 이스라엘로부터 식량을, 이스라엘은 두로로부터 목재와 금, 기타 물품들을 수입함
– ‘내려가매’라는 표현은 열왕기 기자가 예루살렘을 기준으로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
22:4 당시 남유다는 북이스라엘의 종속상태
– 남북이 분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남북간의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했던 이유와(벧엘에 올라간 유다의 한 예언자, 엘리야, 아모스) 예언자들이 남북전체를 대상으로 예언활동을 한 이유는 유다가 이스라엘에 종속되어 있었기 때문
– 735년경 아하스때부터 남유다가 독립
– 예후의 등극 이후 남북왕국의 관계는 경색국면으로 진입.
22:8 아합이 자신의 행적은 돌아보지 아니하고 미가야 선지자가 자신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만, 회개만 촉구한다고 어리광부리는 모습.
22:14 미가야는 소비자중심의 메신저가 아니라 파송자중심의 메신저
–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해 주는 것에 일차적 관심을 두지 않음
–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온전히 전함으로 인해 감옥에 갇히고 사람들의 비판을 받는 표적이 됨을 견디어낸 사람
– 참 예언자는 권력자들의 시녀가 되거나, 생계를 위해 말씀을 왜곡해서도 안 되며, 다수 의견에 편승하는 어리석음도 피해야 함.
22:21 히브리 원문에는 ‘한 영’이 아닌 ‘그 영’으로 되어 있는데 탈무드는 이 영이 이세벨에 의해 죽임을 당한 나봇의 영이라고 해석.
22:22 거짓말을 믿게 하는 영
– 거짓을 믿고자 하는 자에게는 기도응답이 거짓으로 올 수 있음
– 시편 18:25–26의 사특한 자에게는 사특한 방식으로 나타나시고 깨끗한 자에게는 깨끗한 방식으로 나타나신다는 말씀
– 악신을 받아드릴 만한 사람에게 악신을 보낸다는 유대교의 인간관
– 착한 사람에게 악신을 보내서 악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악신 자체를 수용할 준비가 된 자에게 악신이 들어가도록 내버려 둔다는 것
– 전제가 중요.
22:24 미가야를 치는 시드기야
– 그가 가진 철 뿔은 투구에 붙이는 뿔로 이스라엘 왕의 힘을 상징함(신 33:17)
– 군사정권시, 정권의 회개를 촉구했던 이들을 빨갱이라 규정하며 기존 교회에서 내몰았던 종교지도자들을 연상시킴
– 1974년의 로잔언약.
22:26–27 부윤은 성읍의 지도자, 성주나 지사를 가리킴
– 고생의 떡과 고생의 물은 아주 작은 분량의 떡과 물을 의미
– “빵과 물을 죽지 않을 만큼만 먹이라”(표준새번역 개정판).
22:30 미가야의 말을 의식하는 아합왕의 행동
– 의식이 되었으면 미가야의 예언처럼 전쟁을 하러 나가지 말아야 하는 것이 정답
– 길르앗 라못을 차지하고픈 욕망으로 인해 예언자의 말을 경시한 결과 그는 죽임을 당함.
22:34 유대인들의 전통에서는 우연히 활을 쏜 ‘한 사람’을 나아만 장군으로 간주(왕하 5:1).
22:38 창기들이 그곳에서 목욕한 이유에 대해 왕의 피와 접촉함으로써 더욱 아름다워지고 생동감을 얻게 될 것이라는 미신적 기대감 때문으로 봄
– 그레이는 ‘창녀(조놋)’가 ‘무기(지야놋)’라는 단어가 와전된 것이라고 보고 창녀들이 목욕을 한 것이 아니라 군사들이 무기를 그곳에서 씻었다고 봄.
22:41–53 여호사밧은 주전 872–869년까지 3년 동안 부친 아사와 공동통치를 하였고, 기원전 853–848년까지 5년 동안 아들 여호람과 공동통치를 함(왕상 15:24, 22:51–52, 왕하 1:17, 3:1, 8:16–24)
– 여호사밧과 아하시야에 대한 평가
– 죽음 후에 우리는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 사람들의 평가와 하나님의 평가
–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 하나님의 판단에서 승리하는 삶 살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