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17장
•
북이스라엘의 예언자로 엘리야가 등장함
– 북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버림받은 공동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의 대상임을 드러냄
– 엘리야 이야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엘리야를 모세와 관련하여 기술하고 있다는 것
– 엘리야를 모세의 영적 계승자로 강조함
– 하늘로부터 공급받은 음식(만나와 까마귀로부터 공급받은 떡과 고기), 하나님의 산에서의 신 현현 경험, 왕권과의 대결, 열 두 돌로 단을 쌓고 번제를 드림(왕상 18:31; 출 24:4), 바알선지자들을 살해하고 도피(애굽의 군인을 죽이고 도피한 모세), 사명을 받은 자와 완수한 자의 불일치, 후계자의 위임과 알 수 없는 무덤, 홍해와 요단강을 마른 땅처럼 건넘
– 17장의 주제는 누가 비를 내리게 하는가, 누가 일용할 양식을 제공하는가, 누가 생명을 주관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바알이 아닌 오직 하나님이심을 강조하는 것.
17:1–7 그 시대의 관심사는 비, 풍요, 생산성
– 비의 신, 폭풍우의 신인 바알은 천둥과 번개의 신 ‘하닷’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으며 풍요와 다산의 신
– 바알숭배는 풍요와 다산을 신적가치로 여기는 것
– 자유농민의 땅을 빼앗아 거대지주들이 등장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신(21장)
– 자유농민들을 소작인화 시키는 대지주가 대 수출 조방농업을 경영하여 외화를 벌어들이고, 귀중품이나 사치품을 수입함으로써 소비수준을 높이는 것이 오히려 더 풍요롭다는 인상을 줌
– 바알과 아세라 숭배의 사회경제적 함의
– 미 6:16의 ‘오므리의 율례’
– 오늘날 대재벌과 거대 다국적 기업이 이끌어가는 사회, 수출을 많이 해서 외화를 벌어들이는 대기업을 국가경제의 견인차로 믿는 사회가 바로 바알 아세라를 숭배하는 것
– 디셉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3년 기근을 예고
– 비 내림이 바알의 영역이 아닌 하나님의 주권임을 선포함.
17:1 엘리야는 ‘나의 신은 야웨이시다’라는 의미
– 이름 자체가 바알숭배에 몰입하는 시대정신에 대한 저항을 담고 있음.
– 엘리야를 본 이름이 아니라 그의 사역을 되돌아보면서 붙여진 신앙적인 새 이름으로 보기도 함
– 길르앗에 거하는 디셉 사람
– 길르앗은 요단동편 지역으로서 가나안의 바알숭배사상의 영향력이 덜 미쳤던 곳
– 엘리야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외국인일 가능성도 있음
– ‘수년 동안 우로가 내리지 아니할 것’이라고 왕의 면전에서 경고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예언자의 위엄
– 하나님의 거룩한 격동하심에 의해서만 가능한 사역
– 소비자 중심이 아닌 파송자 중심의 사역
– 용기가 필요
– 미 3:8의 성령임재의 증거
– 겔 3장, 33장의 파수꾼.
17:2–7 그릿 시냇가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실현되는 것을 임상체험을 통해 목도하도록 하심
– 까마귀를 통해 도움을 받은 주변부 예언자 엘리야
– 까마귀(오르빔)를 아랍인들(아라비임)로 보기도 함
– 요단 계곡에 살았던 검은 색 피부를 가진 아랍인들을 실제 까마귀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주장(실, 벤함)
– 중요한 것은 굶어죽더라도 깨끗해야 영권이 선다는 것
– 하나님과의 소통이 건강하게 유지되는 자는 말도 안 되는 주장과 행위 앞에서 양심에 비상경보음이 타전됨.
17:8–9 바알종교의 본거지인 시돈 땅의 사르밧 과부를 찾아간 엘리야
– 엘리야 엘리사 사역안에 드러나는 이방지향성, 이방포용성
– 가장 가난하고 힘없는 과부를 통해 엘리야를 도우시는 하나님
– 극빈자로 하여금 더 극빈자를 돕게 하는 방식
– 이스라엘 땅에서는 박해받고 이방 땅에서는 환영받는 예언자의 운명
– 눅 4장에서 예수께서 고향 나사렛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것을 사르밧 과부의 이야기로 빗대어 말씀하심
– 식량을 공급하시는 신도 하나님이심을 증거함
– 이후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살림을 통해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심을 드러냄
– 바알의 영토에서 승리하시는 하나님
– 세상 한 복판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입증하는 운동이 일어나야 함
– 진리는 주장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주장을 현실이 되게 하는 실천에 의해 입증.
17:10–12 당시 과부들이 입던 검은 옷으로 그녀가 과부임을 눈치 챘을 것(창 38:14)
– 통은 큰 항아리를, 병은 들고 다니기 편한 작은 것으로 추정(삼상 26:11).
17:15–16 죽음의 한복판에서 생명의 역사를 경험한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
17:17–18 하나님의 사람이 옴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자신의 죄와 부족함을 보시게 되었고 그 결과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되었다고 주장.
17:19 사르밧 과부의 집에 다락방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녀가 이전에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사람이었다고 추정됨
– 다락방은 지붕에 있는 방으로 바깥 계단을 통해 올라감.
17:21 역접촉신학
– 산 자가 죽은 자와 접촉하여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다는 신앙, 거룩한 사람이 거룩하지 못한 사람과 접촉하여 그를 거룩하게 할 수 있고, 하나님의 종이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의 식어 버린 몸을 소생시킬 수 있다는 것, 생명이 죽음을 삼킬 수 있다는 것
– 엘리야가 시체위에 엎드렸다가 일어나기를 세 번 반복함
– 고대근동 사람들은 3과 7이라는 숫자에 신비한 힘이 있다고 생각하였는데 그것과 연관된 것일 수 있음
– 오늘 우리에게도 죽어버린 이웃의 몸에 내 몸을 갖다 대어 그 죽은 몸을 살리고자 하는 진정성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