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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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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바의 반역
2.
세바의 반역사건은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지파간의 지속적인 반감의 증거로 이후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의 분열을 암시하는 사건.
3.
다윗 체제에 반대하는 정치적 불량배 세바가 반역을 일으킴
다윗은 연속적인 불행을 경험하며 그것을 통해 자신의 죄악을 기억하고 이상적인 왕으로 변화되어 감
회개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어나는 불행한 일들은 죄의 값이라기 보다 는 징계로 이해를 해야 함
밧세바의 첫 아들, 암논, 압살롬, 아도니야도 죽음(징계적 해석)
다윗이 나단의 지적으로 인해 회개를 했는데도 왜 징계를 받는가?
죄가 심판의 원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죄 다음에 돌일킬 수 있는 회개의 기회를 주심에도 불구하고 거부했을 때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오래 참으시는 분이신 것도 맞고, 인자가 영원하신 분도 맞지만 영원히 참으시는 것은 아니다. 회개의 잉계점이 필요한 것이다.
예레미야서 주전 여호와김 4년 느브갓네살 원년까지는 회개를 촉구하시지만 605년 이후에는 회개를 이야기 하지 않으신다. 바벨론의 속국을 받아들이라고 말하심, 그것이 회개의 데드라인이다.
그선을 벗어나게 되면 심판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돌이켜라, 회개하라, 돌아서라 할 때 돌이키면 좋겠는데, 이스라엘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서야 돌이키는 것이다. 인간 죄악의 완악함이다. 상상할 수 없는 엄중한 심판 이후에야 뉘우치게 되는 것이다.
1.
징계의 목적은 성화
하나님께 회개했으면 내 죄도 말끔하게 씻기고, 죄로 인해 받게 될 대가도 다 없어질 것을 기대하면 안된다. : 음란하고 방탕한 삶
회개를 입으로 다 해결하려고 한다. 입으로 말하면 부정적 결과 조차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회개한 사람은 내 죄에 대한 책임을 짊어지겠다는 것이 회개한 사람의 자세이다.
나로 인해 울고 있는 자에게 최대한 보상하는 것이 회개이다.
가끔은 기도가 그렇게 악용되는 경우가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도로 다 해결하려는 사람이 있다.(친구에게 잘못한 사람의 기도)
신앙을 잘못 배운 것이다. 아들들이 죽는 모든 과정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항변하지 않는다. 나단 때 회개했는데 하나님 왜 계속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라고 말하지 않는다. 회개했으니까 나에게 어떤 악영향도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회개하게 되면 하나님은 내 죄를 용서하시지만 징계는 있을 수 있다.
징계의 과정을 통해 성화되어가기를 원하고 다시는 그 죄에 빠지지 않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과거의 상황과 환경이 반복되었을 때 넘어지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의 과거에 내가 넘어진 그 죄를 이겨내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의 능력을 믿을 때 나의 모든 과거로부터 미래ᄁᆞ지의 죄가 다 용서받은 것으로 믿는다. 그래서 어떤 짓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죄를 다시는 반복해서 짓지 말아야지 라는 각성을 통해 죄를 이기기 를 원하심
1.
죄용서의 경험은 유일회적 경험임과 동시에 평생에 걸쳐 일어나는 과정이자 사건 -‘당신은 언제 죄사함을 받았습니까’라는 질문 보다 ‘당신은 죄사함의 은혜 안에서 오늘도 죄를 이기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이 더 욱 중요함
죄사함의 은혜를 입었다고 하면서 여전히 죄의 유혹 가운데 무릎 꿇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모순 아닌가? 작년에 10번 넘어졌으면 이번에 8번 넘어져야 하는 것 아닌가? 죄의 유혹 앞에서 무력한 우리가 무슨 죄사함을 얻었다고 말하는가?
죄사함은 완료형이 아닙니다. 빌립보서 2장 12절에 보면 그 위대한 바울 조차도 구원을 이뤄가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한국교회는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천국의 분양권 ᄄᆞ는 것이나, 천국 열차 티켓 따는 것으로 인식하는 사람이 많다.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구원은 하나님의 통치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구원을 받는 것을 내가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자유이용권을 얻어내는 것을 구원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천국은 내가 마음껏 살 수 있는 내가 원하는 바가 마음껏 이뤄지는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여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가 이뤄지는 곳이다.
누가 천국을 소망할 수 있는가?
천국을 여름 휴양지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마음껏 자고 내가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서 먹고 싶은 것 먹고 노는 곳으로 생각한다.
구원받았다는 확신은 엄청 많은데 하나님의 통치는 받기 싫은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마가복음 8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뭐라고 책망하십니까? 내가 하나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한다. 사람의 일이 무엇입니까? 사람이 원하는 것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욕망, 소원에 관심 있고 하나님의 뜻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당신은 구원받았습니까? 라는 질문보다 하나님은 오늘도 하나님의 통치 안에 거하고 있습니까?
한국교회는 구원을 너무 쉽게 얻어낼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 한국의 신학적 세계관이 왜 뒤틀리냐면 성경은 그 구원 때문에 세상과 단절했는데, 자신의 목숨을 다했는데, 생명을 바쳐 구원을 이루려고 했는데, 한국교회는 교회만 다니면, 등록만 하면, 침례만 받으면 구원 받는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집사님 만난 이야기(수지에 있는 교회에 남성 구역장) - 사후 보험을 들었다.
위로: 그런 분들 많을 것이다. 속에 있는 이야기를 다 끄집어 내지 않아서 그렇지 예수님 믿고 싶은 마음이 이 만큼도 없는 사람이 수두룩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사업 때문에 교회 다니고, 어떤 사람은 인맥 때문에 교회 다니고, 어떤 사람은 마음에 평안을 얻기 위해 교회 다니고, 어떤 사람은 결혼할 배우자를 만나기 위해서 교회 다니는 것이고, 무슨 말이냐면 정말 예수 그분이 우리의 따름이 되어가지고 정말 예수 제대로 믿고자 교회 다니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람들이 교회 다니는 이유는 정말 가지 각색입니다.
오늘 우리의 질문이 바뀌어야 한다. 오늘도 구원 받은 자로서 살고 있는가?
성경에도 한 번 구원 받았다가 이탈된 자들이 많이 나오지 않는가? 히브리서 6장 4-6절 중도 탈락한 사람들이 많다. 구원은 현재 진행형이고 완성되어야 할 것이지 완료형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맏아들 예수 닮음이 죄사함의 은혜를 누리는 궁극적 단계.
1.
성읍에 들어가서 싸운다는 것은 야외에서 정식 기동전을 펴기에는 병력이 소수밖에 되지 않음을 의미(6절)
2.
베림 땅의 여인 하나의 지혜로 성이 침공받지 않으체 세바의 목만 내어놓게 됨
3.
요압의 이스라엘 전체의 군대 장관이 됨
4.
야일 사람 ‘이라’는 제 3의 제사장이 됨
대신으로 번역된 코헨은 제사장을 의미함.
마무리 일회적 신앙이 아니라 평생의 신앙을 지켜내야 승리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