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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서 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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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은 이스라엘 멸망에 대한 아모스의 심정을 담은 애가
애가는 슬픈 노래로서 사람이 죽었을 때 부르는 조가 또는 장속곡
공동체의 몰락에 대해 애통해하는 아모스
회개하지 않은 백성들에 대한 애가
예언자는 하나님을 대변하는 자
예언자의 애통함은 하나님의 애통함을 대변하는 것.
5:1 ‘애가’는 탄식의 노래 혹은 장례식에서 불리는 노래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견하고 부르는 노래
고대 이스라엘의 장례식에는 슬픈 분위기를 고조하기 위해 직업적으로 애가를 불러주는 여인을 동원함
아모스는 이스라엘이 스스로 살아 있다고는 하지만 실상은 죽은 자임을 선포함
계시록의 사데교회
한 존재의 살아있음과 죽었음의 판단 기준이 무엇인가
자신이 진정 하나님앞에서 살아있는지를 냉철하게 물어야 함.
5:2 이스라엘의 쓰러짐은 완료형
이것을 예언자적 완료형이라고 함
아모스의 눈에는 이미 시신이 되어 장송곡의 애도 속에 누운 채로 실려 나가는 처녀 이스라엘의 시신이 보이고 있는 것.
5:3 열명 가운데 한 사람만 산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철저함으로 인해 살아남는 사람이 거의 없음을 의미함.
5:4 멸망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하나님을 찾는 것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행하고 있는 모든 불의와 죄악에서 떠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
하나님을 찾는 것과 길갈과 벧엘을 찾는 것을 동일하게 생각했던 이들에게 충격적인 메시지였을 것
길갈과 벧엘이 아닌 하나님을 찾으라는 선포
하늘에서와 같이 이 땅위에 하나님의 뜻(정의와 공평)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는 삶, 그 하나님나라의 삶을 이루어내는 곳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음
‘나를 찾으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고자 노력하고 정의로운 삶을 실천하라는 것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이 사는 길
명령형 문장은 일종의 권유이자 초청
사회경제적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는 공의와 정의를 실천하는 것
공의와 정의의 실천은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는 것이며, 공의와 정의를 사회 속에 강같이 흐르게 하는 것(5:6,8,24).
5:5 벧엘과 길갈, 브엘세바 성소를 방문할수록 믿음과 신앙이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타락하게 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곳으로 가지 말라고 명하심
아모스가 전통적인 성소의 중요성을 부인하는 것은 오늘날로 보면 역사적으로 유명한 교회에 찾아가더라도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는 말과 같음
공의와 정의를 무시하는 삶, 불의한 삶을 살면서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이 없는 헛된 종교의식.
5:7 ‘쓴 쑥’은 팔레스타인에서 자라는 아주 쓴 맛의 즙을 내는 식물
성경에서 재난의 처절함을 표현할 때 비유적으로 사용
본문에서는 공법을 짓밟은 자들에 의해 희생자들이 맛보게 되는 삶의 처절한 고난을 강조.
5:10 당시 재판 장소는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공공장소인 성문으로 재판은 주로 아침에 열림
아모스의 법 정신은 언약의 내용에 근거
법을 무시하고 가난한 자를 착취하는 것은 야웨 하나님과 그분의 구속사를 통해 세워진 세계질서를 반역하는 것.
5:11-12 이스라엘 백성이 믿고 있던 인과응보 사상을 뒤엎는 주장.
5:11 과다한 징세, 군복무와 강제노동 등으로 인해 농민들이 자기 땅을 빼앗기게 됨.
5:12 성문이 사회질서를 지키고 공동체의 안녕을 보장하는 최후의 보루가 아니라 힘있는 자들과 가진 자들의 탐욕과 착취의 장소로 변질됨
성문이 무죄하고 의로운 자들의 희망의 장소가 아니라, 부패하고 타락한 상류층에 충실한 하수인으로 전락하고 만 것
억울한 재판 때문에 한 맺힌 백성들이 많은 사회는 결코 건강할 수 없음(12).
5:13 이 본문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음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잘못된 현상을 비판적으로 풍자함
지혜자들이 악한 때에 침묵을 지킨 것을 비난하는 조롱신탁
10절과 연결하여 해석하면, “악한 때일수록 더욱 소리를 높여야 하지 않는가, 어두울수록 더욱 빛을 발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발생
세상이 악하고 정의가 땅에 떨어졌을 때에 더욱 소리 높여 하나님의 공의를 선포하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의 자세
여기의 ‘잠잠하다’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벌 받는 모습을 묘사할 때 사용됨(삼상 2:9, 애 2:10, 암 8:3)
‘악한 때’라는 것은 ‘재앙의 때’로 번역할 수 있음
문제는 ‘지혜자’인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히브리어 ‘아룸’의 뜻(지혜로운, 간교한, 벌거벗은)을 살펴보아야 함
13절을 ‘간교한’으로 바꾸게 되면, 여기서 간교하다는 것은 강한 자를 지칭하는 용어이므로, 해석을 다시 하게 되면 ‘그러므로 이제는 강한 자가 잠잠해지나니 이는 심판의 때임이니라’가 됨.
5:14-15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은 선을 찾는 것이며, 그것은 정의를 건설하는 일로 드러남.
5:15 성경이 말하는 죄는 선을 적극적으로 행하지 않는 것(약 4:17)
본문에서 말하는 구체적인 선은 땅에 떨어진 공의를 세우라는 것.
5:17 여호와의 날은 하나님께서 인간들 사이를 지나가시는 날
이스라엘은 이 날을 구원과 승리의 날로만 생각
하나님을 자신들이 독점하고 있다고 사고.
5:21-23 의식주의적, 형식주의적 종교 행위에 대한 책망
번제나 소제 앞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화목제 앞에는 살진 희생이라는 수식이 나옴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악함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은 없이 자신들의 감정이나 종교적인 분위기에 젖어 형식적이고 습관적인 예배를 드림
신앙적 열심이 공의로운 삶으로 이어지지 못함
하나님의 백성들이 신앙적 열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사회에서 비윤리적으로 살아가는 모순된 현상은 하나님앞에서 범하는 큰 죄악
대부분의 신앙인들이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살인, 강포, 포학, 부정, 약자에 대한 착취 등이 하나님의 관심 밖에 있다는 선입견 속에서 살아감
사회적인 불의와 악행을 범하는 자들이 드리는 제의를 하나님은 결코 받으실 수 없음을 선언
아모스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철저한 사회적 책임과 고차원적인 윤리를 강조하면서 무조건적으로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과 함께 하신다는 확신을 뒤집어엎음
여호와 하나님을 찾는 행위는 일상의 삶에서 의로운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함.
5:21 세 절기는 추수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
무교절은 보리 추수, 맥추절은 밀 추수, 수장절은 과실 추수와 연관
윤리적 삶으로 이어지지 않는 종교생활은 무가치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미움과 멸시의 대상이 됨.
5:23 삶이 바르지 않은 자의 찬양은 하나님에게는 소음이고 무거운 짐이 됨
오늘 한국교회는 신실하고 열심을 다한 종교의식이 삶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근원적인 문제를 진중하게 고민해야 함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하나님을 통해 무엇인가를 얻어내고자 하는 것에만 관심을 갖는 어린아이 신앙을 뛰어넘어야 함.
5:24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것을 소개
하나님이 하라는 것에 주목해야 함(미 6:6-8)
참된 예배는 예배자의 마음속에 공법과 정의가 자리 잡고 있을 때에만 가능함
초라한 예배와 웅장한 예배의 기준이 무엇인가
외적 내용물이 아닌, 하나님을 진심으로 만나고자 하는 그 마음이 예배의 진정성을 결정함
아모스에게 있어 이스라엘 사회의 죄악의 핵심은 공의의 부재
미쉬파트와 체다카는 공동체의식
공동체 의식이 결여된 사람은 하나님도 만나기 싫어하는 죄인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사람은 이웃을 형제로 인식함
다른 사람들과 연대 의식 혹은 공동체 의식을 갖게 됨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발현되지 않는 신앙은 실상 하나님이 아닌 자기들이 만든 신을 찾는 것
야웨 신앙의 핵심은 예배 의식 자체보다는 공동체 의식을 실천하는 삶에 있음
진정한 신앙은 이웃에 대하여 정직히 행하며, 특별히 곤궁한 자를 보살피는 일이 수반되어야 함
본문은 크게 두가지로 해석 가능
공법과 정의를 하나님의 것으로 본다면 하나님의 공법과 정의가 물처럼 흘러서 이스라엘 공동체를 심판하신다는 의미가 되고, 다른 하나는 공법과 정의를 이스라엘 공동체가 시행해야 할 것으로 보는 것
한글번역은 후자의 해석을 선호.
5:25-27 하나님은 중심어린 예배를 받으시지 형식적, 의식적 예배를 열납하지 않으심.
5:26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다른 우상을 자기들의 왕으로 삼았기 때문
‘식굿’은 앗수르인이 믿었던 전쟁의 신, ‘기윤’은 앗수르인이 신봉한 별 형상의 우상
앗수르로 포로 되어 가면서도 우상을 버리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어리석은 모습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정당화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