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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 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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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 4-7장
1-3장에서는 이스라엘의 범죄를 여성의 몸과 삶을 가지고 비유를 들었다면, 4장부터는 지금까지 언급한 여성의 몸과 삶이 실제로는 이스라엘의 사회적 몸과 상황임을 보여주고 있음
4:1-3 하나님의 책망
이사야 5장 7절과 유사함
이스라엘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들은 존재하지 않고 이스라엘에게 있어서는 안 될 것들만 넘쳐나는 현실
이스라엘이 정체성을 상실함
생태계를 파멸시키는 인간 사회의 근원에는 진실과 사랑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부재가 있음
죄는 모든 관계를 파괴함.
4:1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 없음으로 인해 그들과 쟁변하심
있어야 할 것은 진실과 인애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
‘인애’는 변함없는 사랑과 충실성을 의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부재로 인해 바알숭배에 몰두하게 된 이스라엘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했다는 말
이스라엘은 야웨를 섬긴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야웨의 윤리적 요구를 전혀 준행하지 않음
하나님을 ‘안다’는 말은 호세아에게 있어 규범적인 믿음을 표현하는 공식
여호와를 아는 것은 여호와의 성품을 닮는 것
히브리어 ‘야다’는 일방통행이 아니라 상호인식과 교감을 전제한 양방통행의 개념
계약이나 결혼 등에서 양쪽 파트너가 계약의 세부 조항을 상호책임적으로 인식하며 성실하게 실천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표현
선한 목자가 양을 알고 양도 그 목자를 아는 것과 동일(요 10:14-15)
안다는 것을 지적인 행위로 보는 것은 헬라적 관점이고, 인격적이며 정서적인 측면으로 이해하는 것은 히브리적 관점
히브리 사상의 출발점은 하나님이며, 유일하고도 참된 지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사람은 결코 자신을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그가 누구인지, 세계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도 인식할 수 없음
헬라인들은 나를 이해하기 위하여 배우지만 히브리인들은 타자를 존경하기 위하여 배운다(아브라함 죠수아 헤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이스라엘의 영적인 건강상태를 측정하는 잣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으면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건강한 관계에 있는 것이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면 하나님과 어그러진 관계에 있는 것이며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부패한 상태에 있게 됨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그분이 어떤 분이신가를 아는 것이고 그분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임을 아는 것이고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무엇임을 아는 것
신앙인의 정체성, 교회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첫 걸음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올바로 갖는 것
하박국 2장 14절의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한다’는 것이 안다는 것
‘안다’는 말은 우선 지식적으로 올바로 아는 것을 의미
올바른 지식을 가지지 못했기에 이스라엘은 바알과 하나님을 혼동하고 그릇된 종교의 길을 걸어갔던 것
또한, 안다는 말은 영적 친교를 의미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신앙과 양심을 판단하는 기준이자 행동의 시금석이 됨
오늘날 목회자들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망각한 채, 세상을 요령있게 살아가는 처세술을 성경말씀과 교묘하게 섞어 인생성공의 스토리를 만들고 그것을 마치 복음의 진리인냥 전하는 근본이유는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
한국교회가 입으로는 세상논리를 따르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실제로는 정확하게 세상 논리를 추종하고 있음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속에서 박해받는 기독교가 진정 기독교답다는 것을 되새겨야 함.
4:2 있어야 할 것이 없으면 반대로 없어야 할 것들이 넘쳐나게 됨
십계명을 요약해 놓음
‘저주’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3계명 위반, ‘속임’은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9계명 위반, ‘살인’은 6계명 위반, ‘도둑질은’은 ‘도적질하지 말라’는 8계명 위반, ‘간음’은 7계명 위반.
4:5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태는 밝은 대낮에도 장애물을 식별할 수 없는 정신이 혼미한 상태
여기 어머니는 ‘사마리아’로 어머니를 파멸시킨다는 것은 사마리아의 파멸을 선언하는 것.
4:6 사명을 망각한 제사장들에 대한 책망
제사장들은 하나님과 백성을 말씀과 제사를 통해 이어주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
제사장들은 사명을 망각하고 그 말씀을 무시하며(6),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끊임없이 욕심을 부리며(7-8,10), 심지어 폭력과 살인까지 저지름(9)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맺음, 하나님의 뜻을 살아냄이 하나님에 대해 지식이 있다는 증거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는 것은 성경지식이 없어서 망한다는 것이 아니라 고아와 과부를 옹호하는 약자중심의 배려심이 없어서 망한다는 뜻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그것을 알고 행하는 것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결핍된 근원적인 문제가 제사장의 직무태만에서 비롯됨
돌판에 기록되어진 율법의 한계
가르치는 자가 부재하거나 가르치는 자가 잘못된 가르침을 베풀게 되면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없음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차이
모든 것은 경계가운데 존재함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명과 정체성을 신실하게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함.
4:7-8 한국교회사의 모습과 유사함
목사들이 많아질수록, 교회가 많아질수록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 아님
먹고 살기 위한 생계형목회자들의 범람으로 인해 교회의 교회됨, 목사의 목사됨이 더욱 파괴되어짐
참된 말씀선포는 예배 참석자의 마음을 상하게 할수도 있는 가혹한 책망을 포함함.
4:7 부유와 번성은 여로보암 2세 시대의 특징
두로와 외교관계를 맺고 지중해 무역에 참여하면서 이스라엘은 점점 부유해짐
동시에 종교와 사회에 가나안모델과 이방모델들이 유입됨
이런 상황에서 제사장들은 가장 큰 이익을 본 사람들 중에 하나가 됨
부와 권세를 가진 상류층 사람들의 정신적 종교적 이념적 지지그룹이 되어 그들이 소유한 명예와 부를 공유하게 됨.
4:8 속죄제물은 죄로도 번역 가능
제사장들이 백성들의 죄로 먹고 산다는 경멸조의 말
백성들이 죄를 많이 지을수록 제사장들의 삶은 더 부유해지는 역설적 상황.
4:9-10 타락한 백성과 그것을 이용하여 삶을 영위하는 제사장 모두를 심판하시는 하나님
바른 신앙을 가르치라고 세움 받은 사람들이 도리어 잘못된 신앙을 키우는 역할을 함.
4:11-19 이스라엘이 범한 우상숭배의 삶을 책망하심.
4:11 음행과 쾌락에 마음을 빼앗겨 버린 백성들
요일 2:16절이 말하는 육신의 정육,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마음을 빼앗겨 버림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을 대적하는 세상의 복음.
4:12 바알을 섬긴 일을 창기의 짓으로 묘사
여기 ‘음란한 마음’은 백성들의 탐욕을 추구하는 마음이요, 백성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사명을 망각하고 백성들로 잘못된 길을 가도록 미혹한 지도자들의 마음
이스라엘이 바알제의에 몰두한 이유는 음행의 영에 미혹되었기 때문이고, 음행의 영이 그들의 내면세계를 점령하였기 때문(5:4)
신앙의 궁극적인 목적을 세속적 성공추구와 부유함을 누리는 것에 둠
시편 1:1-2절이 말하는 복있는 사람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지지 못함.
4:13 볼프는 ‘며느리가 외간 남자와 놀아났다’는 것을 가나안에 있었던 신부의식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봄
이것은 일종의 성년의식으로서 시집갈 처녀가 신의 풍요를 약속받기 위해 신전에 올라가 대기하면 낯선 남자가 돈을 던져주면 함께 관계를 갖는 것
용모가 아름답지 못한 여인은 자기 차례가 올 때까지 몇 년씩 기다려야 했다고 함
볼프는 이 의식이 이스라엘에도 전래되었을 것이라고 봄
헤로도투스에 따르면 바벨론의 여자는 누구라도 일생에 한번 신전에 앉아 낯선 사람과 관계를 가져야 했음.
4:14 총체적 타락의 현실
호세아는 이스라엘의 남자들이 성창과 놀아나는 판국에 이스라엘의 여자들만 벌할 수 없지 않느냐고 묻고 있음
누가 누구를 책망할 수 없는 상황
너나 잘 하세요
남성창기들도 일부 있었는데 이들은 동성애자들을 위한 창기들이었을 것이라고 추측
집약농법에 의해 가정이 해체되고 생계수단을 상실한 밑바닥 여성들이 마지막 생존의 몸부림으로 성소 주변으로 내몰린 상황에서 하나님은 이들의 간음죄에 대해 심판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심
이 여인들이 행음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지배 엘리트 계층의 위선적인 윤리관에서 진정 누가 야웨의 심판을 받을 자인지를 돌아보라는 말씀.
4:15 북이스라엘의 음행이 남유다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하라고 명하심
순종은 전염성이 약한데 비해, 불순종과 반역, 죄악은 전염성이 매우 강함
내가 누구를 만나, 무엇에 영향받으며, 무엇을 본받고자 하는지를 늘 물어야 함
길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할례를 받았고 유월절을 지키면서 새 출발을 서약함(수 4:19-20)
‘벧아웬’은 ‘죄악의 집’이라는 뜻으로, ‘하나님의 집’인 ‘벧엘’을 조롱하여 부르는 말
여로보암 1세가 벧엘에 금송아지우상을 세움.
4:16 ‘완강하다’는 말은 하나님에 대하여 완전히 반항적으로 달려든다는 뜻.
4:17 에브라임이란 이름은 구약에 180번, 신약에 1번 등장함
에브라임이란 이름이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호세아서로서 37번이나 기록됨
에브라임은 요셉의 둘째 아들로 북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지파
‘번성하다’라는 뜻의 ‘파라’에서 파생된 말
에브라임은 에브라임 자손들과 그들의 영토를 가리킴과 동시에 예언서에서는 주로 북왕국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사용됨
북왕국의 첫 수도인 세겜도 에브라임 지역안에 있었고(왕상 12:25), 여로보암 1세도 에브라임 지파 출신(왕상 11:26)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민 13:8), 다윗왕 시대의 에브라임 지파의 우두머리(대상 27:20)가 모두 호세아라는 이름을 가짐
예언자 호세아도 에브라임지파 사람으로 주로 에브라임 지역에서 예언사역을 했다고 봄
호세아는 출애굽전승과 광야전승을 언급할 때는 이스라엘을, 북왕국을 가리킬 때에는 에브라임이라는 표현을 주로 사용함.
4:19 날개는 이동을 뜻함
음행의 정신이 그들을 둘러싸 어디론가로 날려 보낸다, 즉 데리고 간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