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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훔서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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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나훔이 본 니느웨에 대한 경고의 말씀
묵시는 예언이나 계시를 의미
나훔이 살았던 엘고스가 어디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음
제롬은 갈릴리에 있는 엘고스라 주장
가장 유력시되는 곳은 한때 시므온 지파에게 주었던 유다 남단의 위치한 곳으로 추측함.
1:2 질투하시고 진노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이 땅 가운데서 행할 한 백성을 세워 그들이 언약적 부르심을 폐기하지 않고 신실하게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기를 원하심(창 18:19)
질투하신다는 것은 세상을 향한 자신의 구원목적을 위해 최선을 다하시는 하나님의 열정적인 의지를 드러내는 표현
2절은 용사로서의 하나님이 자신을 대항하는 적들에 대하여 그들을 파괴할 수밖에 없음을 말하는 신학적 근거를 제시함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가운데 건설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대적하는 악의 세력은 반드시 멸망되어야 함
죄에 대해 단호하게 심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거부하고 하나님을 용서하시는 분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지극히 편협한 사고
물론 인간의 죄에 대해 관대하시고 오래 참으시는 것은 하나님의 선하심의 한 증표임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은 죄된 길로부터 돌이키기를 원하시는 긍휼하심의 모습
그러나 더 이상 기회를 주어도 돌이킬 가능성이 없을 때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시행하심
문제는 하나님의 심판의 때와 우리가 소망하는 심판의 때가 다를 수 있다는 것
루터는 “주께서 지금 당장 복수해 주시기를 원하는 것이 우리의 약점 중 하나이다”라고 말함
‘질투’란 단어는 히브리어 ‘카나’동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그 중심적 의미는 결혼관계에서 발생하는 질투와 관련이 있음
질투란 본질적으로 경쟁자를 용납할 수 없음을 의미
경쟁자를 용납하고 합법화하는 것은 질투의 진노를 일으키는 범죄가 됨
이스라엘이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하여 간음행위를 하는 것이며 그로 인하여 이스라엘은 파멸의 형벌을 받게 됨
보복하시는 하나님(신 32:35,41)
현대사회에서 복수라는 인식은 매우 부정적이며, 구약시대의 원시적인 율법 조항 정도로 취급받고 있는 실정
구약안에서 복수의 개념은 야만적인 피의 보복에서 법치적 보복으로 발전되어짐
도피성 제도는 개인적인 또는 집단적인 복수의 관습을 합법적 테두리 안으로 끌어 들인 제도
복수해 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믿음은, 억울함을 당하고도 호소할 곳도, 복수할 힘도 없는 자들에게 유일한 희망의 근거가 됨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괴롭힌 앗수르와 같은 제국을 복수해 주신다는 인식은 이스라엘에게 희망의 근거가 됨
하나님께서 복수를 통해 정의를 구현하심을 믿는다면, 인간의 개인적인 복수의 필요는 사라지게 됨
복수의 실행을 위한 바람은 파괴적인 표시가 아니라 마음으로부터의 소망이고 정의를 위한 갈망
구원사적 관점에서 하나님의 거룩과 정의의 의미로 이해해야 함
하나님의 진노는 그의 대적자에게 향하는데 이는 이스라엘의 적을 의미하기도 하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숭배한 이스라엘도 때론 하나님의 적이 되기도 함
하나님은 그를 대적하는 모든 자에게 그의 보복의 진노를 부을 것이며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변호하고 보호하실 것
나훔은 하나님이 앗수르의 신들보다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강한 힘을 가지신 분이지만 다만 그 진노의 분을 참으심을 강조함
하나님은 악한 자들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서기를 기대하고 인내하시는 것이지 끝가지 악을 보고 내버려두시는 분이 아니심
우리에게도 나훔처럼 하나님의 역사운행에 관심을 갖고 그런 악에 대하여 고발하고 악을 이겨나가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함
오늘날 교회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망각하고 메시지의 무게중심이 사랑, 긍휼, 평안, 축복에만 너무 편중되어 있음.
1:3 ‘노하기를 더디하신다’는 표현을 통해 하나님의 심판이 오랜 기간의 참음 이후에 시행되는 것임을 강조함
오래 참으심의 목적과 심판의 목적은 동일함
죄된 길로부터 돌이키기를 기대하심.
1:4 혼돈의 세력인 물과 싸워 승리하는 창조주 하나님을 묘사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창조주 하나님과 견줄 자가 없는 절대 주권자이심을 말하고 있는 것
나훔은 혼돈과의 전쟁이라는 창조전승을 통하여 창조주 하나님은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하여 혼돈의 바다와 강들로 표현되고 있는 하나님의 대적을 파괴하실 수 있는 능력의 구원자이심을 보여줌.
1:5 ‘산이 녹고, 땅이 솟아오른다’는 것은 지진을 표현하는 것.
1:7-8 악한 자들에 대한 심판은 그 악한 자들에게 눌려 살아왔던 선한 사람들에게는 구원의 사건이 됨
하나님이 우리의 대적이 되게 할 것인가, 우리의 위로가 되게 할 것인가.
1:11 여호와께 악을 꾀하는 한 사람의 강력한 지도자의 출현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음을 알려주는 사건
여기 한 사람은 정복자 한 사람만을 칭하는 것이 아니라 앗수르의 정복자 모두를 칭하는 것
니느웨의 폭력적 잔인함이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일으킨 중심죄악(3:1)
악한 자들이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시기가 심판받기 직전의 상황
‘사악한’으로 번역된 ‘벨리알’은 ‘무’ 또는 ‘무가치함’을 의미함
위경 중 열두 족장의 유언, 이사야의 승천, 희년서 등을 보면 벨리알은 통칭 사탄을 가리키는데, 사도바울도 고후 6:15절에서 이것을 따르고 있음
벨리알(사악함, 무가치함, 세상의 죽음의 세력)은 살아계신 하나님에 의해 멸절되고 말 것
1:12-13 북이스라엘을 심판하는 일에는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된 앗수르가 이제는 자신들의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됨
한번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었다고 하여 모든 심판으로부터 면제되는 것은 아님
1:14 갑자기 청중이 유다에서 니느웨 혹은 니느웨의 왕인 2인칭으로 바뀜
1:15 히브리인들이 생각하는 화평이라는 말은 각 개인의 평강, 시민의 평강과 번영을 가져오는 지역사회의 안녕, 그리고 국가적인 권력에서 확립된 생활질서 등을 의미
히브리어의 특징은 관계적 용어라는 것